"승진했으니 대출금리 내려달라"…올 은행 이자 2000억원 깎았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윤영찬 씨(35)는 지난해 한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 2500만원을 받았다. 신용등급 3등급으로 만기 1년짜리 직장인급여이체 신용대출을 받고 연 5.1%(우대금리 포함)의 이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직장 내 인사를 통해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연봉이 450만원가량 늘었다. 거래 은행에 연봉이 늘었으니 금리 인하가 가능한지 물었고, 0.2%포인트를 깎아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연 5만원의 이자를 아낄 수 있게 된 셈이다.

◆은행 대출이자 인하 올해 5만건

윤씨처럼 자신의 신용등급이 올라갔거나 연봉이 늘어 은행에 이자를 깎아달라고 요구해 혜택을 본 사람들이 늘고 있다. 3일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해 대출금리를 할인받은 실적은 5만3012건(21조29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 경감 금액은 2129억원으로, 평균 연 1%포인트 정도 금리가 내려갔다.

금리 인하를 요구할 경우 받아들인 비율은 은행별로 차이를 보였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채택률이 100%였다. 이자를 깎아달라는 고객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기업은행도 1만6270건(7조3623억원) 중 1만6177건(7조3328억원)을 받아들여 채택률이 99.4%에 달했다.

국민은행은 642건(2097억원) 중 625건(2029억원), 신한은행은 1만1608건(1조9973억원) 중 1만1044건(1조8800억원)의 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했다. 채택률은 각각 97.4%와 95.1%였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99.5%, 93.8%에 달했다. 다만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채택률이 60%대에 그쳤다. 농협은행은 8710건(1조1082억원) 중 5998건(6795억원), 우리은행은 1245건(7278억원) 중 790건(4529억원)이 채택돼 각각 68.9%, 63.5%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인하 요구권에 대한 홍보 여부나 지점장 전결 기준 등에 따라 은행별로 신청 건수가 차이난 것 같다”며 “은행들 중에는 금리인하 조건을 갖추지 않은 고객한테 아예 신청을 받지 않아 실적이 좋게 나온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내달부터 2금융권도 가능

금리인하 요구권은 소득이 늘거나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 및 개인이 은행에 대출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2002년 은행에 도입된 이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은 탓이다. 은행들로선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예대마진)가 핵심 수익원이다 보니 금리인하 요구권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 해왔다.

늦게나마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부터 금리 인하의 요구 대상 및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홍보를 강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의 강력한 지도와 소비자보호 강화 분위기 등을 의식해 조금씩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때 적용된 금리에 대해 문자 전송 서비스를 통해 금리인하 요구권을 공지해 주고 있다.

그 결과 2011년 112건(160억원)에 불과했던 금리인하 채택 실적은 지난해 5945건(80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금리인하 요구권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올 연말부터는 신협 농협 수협 등 상호금융회사 및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서도 금리인하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금감원이 제2금융권에도 새로운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적용토록 해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