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분노를 국가에 위임할 때
법은 시퍼런 칼이지만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압력 밸브이기도 하다. 아니 그것이라야 진짜 법이다. 법은 긴 시간의 형성물이기에 잠시의 시간들을 초월한다. 우리가 국회에서 찍어내는 급조된 법들에 경계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급조되는 법들에는 역사성이 없고 종종 반(反)법치적 독소마저 섞여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추징금을 받아내는 과정이 법치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우선 위헌논란 속에 값싼 정의의 법이 만들어졌다. 1672억원의 추징금을 토해내도록 하기 위해 전직 공무원이 제삼자 명의로 은닉한 불법 취득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소급 특례법이었다. 검찰은 졸지에 살인 면허장이라도 받아든 처지처럼 되고 말았다. 누구라도 불러낼 수 있고 수사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반드시 결과를 내놔야 했다. 결국 두 아들을 모두 구속해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법과 검찰은 공갈이나 협박 비슷한 원초적 완력을 쓰고 말았다. 압력 밸브는 터지고 증오는 대중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법은 당연히 보복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자녀를 잡아 가두는 싸구려 보복 전술을 구사한다면 그런 법은 우리가 공포에 질려 국가에 위임했던 것과는 아주 멀어지게 된다. 형평성 문제도 당혹감을 안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정치자금과 그 자녀들의 꽤 많다고 알려진 국내외 재산에도 생각이 미친다. 또 대통령들의 정치자금과 그것의 축적과정과 정치 보복 등 일련의 과정 말이다. 다행히 누구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장병주 (주)대우 사장은 2005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3조7127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그는 마지막 언도를 들으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몇 억원이나 몇십 억원 같으면 잠을 못 잤을 것이지만 조 단위를 넘어가는 추징금이라니! 지옥의 노역으로도 못 갚을 돈을 추징받고 나니 비로소 이건 나의 책임범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너무 큰돈이어서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김우중 회장은 17조원을 맞았다. 강병호 사장 등 다른 세계경영의 전사들도 그날 밤 두 발을 뻗고 잤다.

외환관리법상 신고의무를 생략한 채 수출대금으로 해외 채무를 갚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뇌물도 아니었고 비자금도 아니었고 부정축재는 더욱 아니었다. 최근 어떤 방송사는 베트남의 한 골프장 소파에서 졸고 있는 노인 김우중을 몰카 기법으로 찍어 내보내기도 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과 고개를 떨구고 잠든 고독한 노인의 이방인적 오버랩이었다. 그 고발 영상에서 풍기는 증오감이라니! 그런 여론에 힘입어 이제 김우중 추징 특별법이 또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밸브 기능을 상실한 법과 사법기관, 그리고 입법이, 다스려야 할 증오를 외려 증폭시키고 있다. 분노는 새 목표를 찾았다.

잇단 무죄 판결들도 그렇다.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은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수뢰와 알선수재로 재판을 받았으나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며칠 전엔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도 무죄였고 요란했던 김두우 전 청와대홍보수석도 무죄였다. 물론 검찰은 이 순간에도 더 많은 뇌물과 수재와 사기와 횡령범을 다스리면서 정의를 실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독백처럼 단죄 과정들이 너무 거칠어지고 있다. 수사 중에 그렇게 많은 자살자를 남긴 사람이 총장이 되기도 했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질주는 종종 그렇게 참사를 부르기도 했다.

지금 중환자가 되어 누워 있는 김승연 회장은 무려 네 차례의 압수수색 끝에 털어서 난 먼지 때문에 구속됐다. 먼지가 날 때마다 분노 역시 춤을 추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 횡령·배임 혐의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사건 총 5716건 가운데 1496건(26.2%)에만 실형이 선고됐다. 나머지는 희생자였다. 이들에게 국가와 법은 과연 무엇일까.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