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짠'한 술잔에 '찐'한 동료애…점심 때 사우나 모임이 그립다
“오늘 약속 없는 사람? 가볍게 저녁이나 먹고 갈까?”

오후 5시30분, 신 부장의 제안에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대신 사내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타닥타닥’ 자판 소리가 분주했다. 1시간 뒤 공손히 인사한 다음 ‘칼같이’ 퇴근하기 시작하는 팀원들. 정말 가볍게 밥만 먹을 요량이었던 신 부장은 머쓱해졌다.

○20년 전 그들의 이야기


그가 입사한 1993년에는 달랐다. 선배들이 “저녁 먹고 가자”고 하면 약속까지 깨가며 저녁시간을 ‘헌납’해야 했다. “소개팅 하던 여자와도 번번이 깨지고 선배들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배고픈 것 참느라 고역이었죠.” 당시에는 위에서부터 직급 순서대로 퇴근하는 것이 암묵적 규칙이었지만 지금은 퇴근 시간에 맞춰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후배들이 많다.

신 부장은 “그땐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에 몸은 지쳤지만 끈끈한 동료애와 애사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386 컴퓨터가 최신이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보는 스마트 시대”라며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 신용카드 사태,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조직에서의 생존법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지난해 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 ‘응답하라 1997’ 열풍이 30대 초반의 감성을 자극한 데 이어 올해는 연령대가 더 올라간 ‘응답하라 1994’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넥타이부대들이 ‘그때 그랬지’를 외치며 추억에 잠기는 일도 늘었다.

○“촌스러운 유니폼, 울면서 입었죠”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20년 전만 해도 여직원이 유니폼을 입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 금융 관련 공기업의 여자 팀장인 최모씨는 1991년 입사했을 때 유니폼 때문에 마음고생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최 팀장은 “촌스러운 유니폼 때문에 너무 창피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 회사 임원들은 매년 자신들 입맛에 맞는 디자인으로 유니폼을 바꿨다. 그런데 하나같이 녹색, 남색, 검정색 등 칙칙한 색깔이었다. 대학 시절 잘 나가는 ‘패션 피플’이었기에 안그래도 유니폼을 입기 싫었던 최 팀장에겐 ‘고역’이었다. “그땐 여직원 수가 많지 않아 유니폼을 입으면 어디에서든 바로 눈에 띄었죠.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 밥 먹는 게 제일 싫었어요. (웃음) 5년 정도 후에 유니폼이 사라졌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대기업에 근무하는 20년차 조 부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배운 담배를 최근 끊었다. 회사 건물 내부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강도 높은 금연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입사한 1994년만 하더라도 사무실 안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웠다. 당시 팀의 막내였던 그가 출근해 가장 먼저 한 일도 팀장 책상의 재떨이를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었다.

요즘 ‘별’을 단 임원들까지도 동네 구석에서 눈치 보며 뻐끔뻐끔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며 조 부장은 “세월의 흐름을 새삼 실감한다”고 했다. “담배 냄새 풍기면서 보고하면 ‘자네 빨리 담배 끊게’라고 쏘아붙이는 임원도 적지 않죠. 20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한 거예요.”

○거하고 진한 회식의 추억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 상무는 직원들과 회식할 때마다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리고는 한다. 요즘 회식자리는 대개 1차에서 삼겹살을 먹고, 2차로 호프집에 가 간단하게 맥주를 한두 잔 마신 뒤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입사한 20년 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1차 회식자리는 무조건 소고기, 2차는 음악과 대화가 있는 아늑하고 단란한 곳(?)에서 양주, 3차는 골방에서 카드나 화투를 친 후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팀 회식비가 한 달에 몇십만원 정도에 그치는 요새는 상상하기 힘든 ‘과소비’였다. “1990년대는 한국 경제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잖아요.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회식이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죠.”

더구나 최근엔 후배 직원에게 과거와 같은 회식 문화 얘기를 꺼냈다가는 ‘노땅’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김 상무는 “20년 전 다소 흥청망청했던 분위기가 바람직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끈끈한 조직 문화가 그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년 전 선배들은 편해 보였는데”


“제가 입사했을 때는 부장급이 되면 책상이 늘 깨~애~끗했어요. 후배들이 가지고 오는 서류를 결제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특별히 없었다는 뜻이죠. 요즘은요? 어휴….”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박 실장은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직장 내에서 관리자의 업무량과 책임이 동시에 과중해졌다”고 말했다. 기점은 역시 외환위기였다. 하루종일 신문을 정독하고 사우나도 가며 여유를 즐기는 ‘무능한 관리자’의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박 실장은 “요즘은 문서 작업하다 하루가 다 간다”고 털어놨다. 직원들이 적어 올린 문서를 ‘빨간펜 선생님’의 마음으로 세세히 고쳐줘야 하고 자신이 직접 기안해야 하는 보고 서류도 적지 않다고. 그는 “선배들 시절보다 관리자로서 일이 많아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후배 직원들에게 ‘우리 땐 실장이 이 정도 일만 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같은 곳에서 일해도 얼굴 볼 일 없어”
1990년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업무환경이 전산화한 것도 큰 변화다. 이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 중 하나는 ‘홍보맨’ 외길을 걷고 있는 정 부장이다.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릴 때는 문서와 사진을 정갈하게 인쇄해 노란 봉투에 넣은 다음 언론사를 일일이 돌아다니는 ‘셔틀’을 했다. 요즘처럼 웹하드에 올린 뒤 이메일로 뿌리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정 부장은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고생이었지만 업무상 만난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교감은 그때가 훨씬 강했던 것 같다”며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이메일이나 문자로 모든 걸 해결하는 요즘이 편하긴 하지만 사람들과 얽히는 재미는 없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20여년째 일하고 있는 이 부장도 “같은 공간에서조차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대신 웬만한 문제는 메신저로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며 “대화가 줄고 소통이 막힌다는 생각이 늘 든다”고 말했다.

임현우/황정수/강경민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