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언어라는 씨앗
신(神)의 인간에 대한 최대의 도박은 언어능력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은 바로 언어능력인데, 이로써 인간은 서로 소통하는 강력한 도구를 허락받은 셈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인간의 언어능력은 심지어 신의 위치에 도전할 만큼 위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언어능력을 우리 인간은 그리 신통치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누구나 부모의 품안에서 자라면서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말하자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다. 비싸게 돈 들여 산 것이 아니어서인지 하찮게 여기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뇌에 자리잡으면서 뇌량이 변화하고, 이전의 원숭이 뇌와 유사하던 것이 급격히 구별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5세가 되면 이미 ‘작은 언어학자’라고 할 만큼 모국어가 완성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인지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런 사실은 그저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알려져 있다. 새삼스러울 게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서 다시 녹아져 나온 언어는 우리 일상 속에 무수히 뿌려지는 씨앗이 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공짜 언어는 그 안에 새로 태어날 메시지를 담고, 세상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언어와 인간의 삶이 꼭 닮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성장하고 변화해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마주할 때마다 이 신적인 언어능력에 경외심과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들의 청춘이 소생되거나 단숨에 시들어버리게 할 수도 있는 이 가공할 만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신의 도박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언어학 입문’이라는 수업에서 실험적인 숙제를 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자기가 대화할 편안한 상대를 찾아 ‘별 뜻 없이’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해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마운 뜻’을 담아 말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떤 말이든 상대방에게 큰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이었다. 무심코 뱉어버린 이 ‘위험한’ 씨앗은 불행하게도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아뿔싸, 나는 강의실에서만 지난 20여년 동안 이런 씨앗을 뿌려왔는데 그 결과는 제자들의 삶 속에 나타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황선혜 < 숙명여대 총장 hwangshp@s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