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글쓰기, '野性이 숨 쉬는 공간'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물 중에는 평소 좋아하던 글이나 시를 빼곡히 적은 십여권의 노트가 있다. 어머니의 필체로 직접 쓴 편지 한 통도 소중하게 남겨져 있다. ‘네 편지 받아볼 때마다 내 마음 한량없이 기쁘며 가슴이 뭉클하다. 큰 뜻을 이루어 보려고 거침없이 행하는 용기와 집념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라고 시작하는 이 편지 말미에는 ‘1982년 10월25일, 어미로부터 사랑하는 딸에게’라고 적혀 있다. 그 옛날, 딸을 먼 타국으로 유학 보낸 후 간절한 마음으로 격려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자신의 글로써 내 곁에 계신다.

리더십을 중요한 덕목으로 훈련하고 있는 우리 대학은 올해부터 ‘미리 쓰는 자서전’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4년간의 도전적인 대학생활 기록물을 축적해 졸업할 때 한권의 책으로 출간해내는 것이 목표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나가게 하고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속도계 계기판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속도가 경쟁력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점점 자신의 고유한 색깔도 자신감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마치 케케묵은 하릴없는 사람들의 넋두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나는 글쓰기를 위해 자신을 책상 앞에 놓는 순간부터가 자신과 세상 사이를 넘나들면서 가장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훈련하는 긴 호흡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野性)이 숨 쉬는 공간’이라고 골드버그가 말했다. 단언컨대, 이 정해진 방향 없이 자유롭게 글쓰기로 무장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대학 4년간이다.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와 인턴십을 하면서 어떤 칭찬과 흥분된 순간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방황을 겪었는지 자신만의 드라마를 쓰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뿌리 깊은 내공을 쌓아가게 될 것이다.

황선혜 < 숙명여대 총장 hwangshp@s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