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우수하단 평가에 퇴직한 임시직도 발탁, 직원 말에 귀 쫑긋…발로 뛰는 소통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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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 경청 리더십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임 회장의 현장경영
더 생생한 얘기 듣기 위해 실적 저조한 곳부터 방문…차·과장과 소규모 토론도
"혁신의 답은 현장에 있다"
임 회장의 현장경영
더 생생한 얘기 듣기 위해 실적 저조한 곳부터 방문…차·과장과 소규모 토론도
"혁신의 답은 현장에 있다"
지난 9월2일 농협은행에 특별한 두 사람이 입행했다. 주인공은 출산휴가차 자리를 비운 직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시직으로 뽑은 ‘산전·산후 대체직’ 출신 김애경(32) 안수진(35) 씨. 이들은 각각 올 6월 말과 1월 말로 계약기간이 끝나 퇴사했지만 재직 당시의 우수한 실적을 높이 평가받아 꿈에 그리던 정규직이 됐다.
이들을 발탁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임 회장은 6월 중순 취임 직후 경기영업본부를 찾아 직원들과 대화하다 실적이 우수한 비정규 직원이 그대로 그만둬 아쉬울 때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올해 퇴사자를 포함해 500명에 달하는 산전·산후 대체직의 업무성과를 전수 조사해 두 사람을 정규직으로 뽑았다. 이들은 지금도 영업현장을 누비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장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미덕
임 회장은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미래의 장관감’이란 소리를 듣던 그였지만 6월 농협금융 회장에 선임될 즈음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공무원 출신 낙하산이 민간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적인 시각이었다. 비슷한 경력의 직전 회장도 농협금융 특유의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임기를 채우기 전에 물러난 터였다.
하지만 임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외부에서 온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다른 금융회사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농협문화를 고려할 때 외부인이라야 더 혁신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임 회장이 혁신을 위해 제일 먼저 한 건 현장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보고 라인을 통해 올라오는 얘기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취임 후 꾸준히 하고 있는 현장 방문도 그런 맥락이다. 8월 서울·경기 지역 은행 보험 각 지부 방문을 시작으로 9월 충북·전남, 10월 경남·경북, 11월 강원·충남을 돌았고 이달 들어선 전북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또 1등 점포부터 찾는 다른 최고경영자(CEO)들과 달리 실적이 가장 저조한 곳부터 들른다. 그래야 더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담당 임원의 ‘프레젠테이션’만 받고 오는 형식적인 현장 방문도 지양한다. 가는 곳마다 차·과장급 이하 직원을 4~5명씩 소규모로 모은 뒤 눈을 맞대고 대화한다. 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같은 이유로 지주 자회사 CEO들과의 미팅도 과거처럼 집단으로 모이는 방식 대신 1 대 1 회의로 바꿨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 선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광고모델로 영입한 ‘대박’도 영업점을 돌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경쟁은행들보다 광고가 약하다’는 지적과 ‘류 선수의 부친이 농협 고객’이라는 정보를 직원들과의 대화 시간에 듣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필요하면 경쟁 은행에서도 배워야”
임 회장의 귀는 농협금융 내부로만 열려 있는 게 아니다. 회사 바깥에서 농협금융에 대한 얘기도 주의 깊게 듣는다. 보다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부터 이례적으로 다른 은행 리스크 담당 임원들을 만나 농협금융의 장단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경쟁사들에 비해 리스크 관리 체계가 취약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가 취한 해법은 리스크 관리 담당 직원들을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경쟁은행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리스크 관리에서 앞선 경쟁사에서 하나라도 더 배워오라는 취지였다. (→ 외부에도 열린 귀)
자존심 강한 은행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노하우가 실무에 적용되고 성과가 나타나자 불만은 사그라들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취임 직후인 2분기 말 2.28%에서 3분기 말 1.92%로 0.36%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수지도 개선돼 2분기 399억원 순손실에서 3분기 1022억원 순이익으로 전환했다.
임 회장 자신도 리스크 관리를 우선과제로 삼았다. 조선·건설·해운 등 3대 경기 민감 업종의 거액 부실 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직접 주재한 데서 잘 드러난다. 여신전문인력을 확충한 뒤 인센티브를 늘리고, 금리운용체계도 건전 여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이 같은 내실 다지기는 현안인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농협금융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선 100%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임 회장은 8월 중앙회 이사회에서 직접 인수 필요성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임 회장의 신중한 행보와 경청하는 자세를 주목해 온 조합장들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큰 박수로 그를 지지했다.
목소리 낼 땐 확실하게 … 커진 존재감
‘덩치만 큰 곰’이라는 평가를 받던 농협금융은 임 회장 취임 후 여러 이슈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협금융은 한진해운이 추진했던 4억달러 규모의 영구채 발행에 필요한 보증 지원에 앞장서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다른 은행이나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행보를 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금융당국에 대한 발언권도 세졌다. 7월 정부가 STX조선해양에 나간 여신을 정상 바로 아래 등급인 ‘요주의’로 분류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도 임 회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질적인 적자 상태인 농협은행의 수익방어를 위해 임 회장이 뛰었다는 후문이다.
농협금융 내부의 의견 조율도 일사불란해졌다. 최근엔 농협중앙회가 관리하던 농협은행의 정보기술(IT) 업무를 농협은행으로 옮긴 데서 잘 드러난다. 이 역시 중앙회와의 대화를 통한 공감대가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큰 덩치 못지않게 금융시장 내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임 회장의 다음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이들을 발탁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임 회장은 6월 중순 취임 직후 경기영업본부를 찾아 직원들과 대화하다 실적이 우수한 비정규 직원이 그대로 그만둬 아쉬울 때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올해 퇴사자를 포함해 500명에 달하는 산전·산후 대체직의 업무성과를 전수 조사해 두 사람을 정규직으로 뽑았다. 이들은 지금도 영업현장을 누비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장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미덕
임 회장은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미래의 장관감’이란 소리를 듣던 그였지만 6월 농협금융 회장에 선임될 즈음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공무원 출신 낙하산이 민간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겠느냐’는 냉소적인 시각이었다. 비슷한 경력의 직전 회장도 농협금융 특유의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임기를 채우기 전에 물러난 터였다.
하지만 임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외부에서 온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다른 금융회사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농협문화를 고려할 때 외부인이라야 더 혁신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임 회장이 혁신을 위해 제일 먼저 한 건 현장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다. 보고 라인을 통해 올라오는 얘기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취임 후 꾸준히 하고 있는 현장 방문도 그런 맥락이다. 8월 서울·경기 지역 은행 보험 각 지부 방문을 시작으로 9월 충북·전남, 10월 경남·경북, 11월 강원·충남을 돌았고 이달 들어선 전북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또 1등 점포부터 찾는 다른 최고경영자(CEO)들과 달리 실적이 가장 저조한 곳부터 들른다. 그래야 더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담당 임원의 ‘프레젠테이션’만 받고 오는 형식적인 현장 방문도 지양한다. 가는 곳마다 차·과장급 이하 직원을 4~5명씩 소규모로 모은 뒤 눈을 맞대고 대화한다. 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같은 이유로 지주 자회사 CEO들과의 미팅도 과거처럼 집단으로 모이는 방식 대신 1 대 1 회의로 바꿨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 선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광고모델로 영입한 ‘대박’도 영업점을 돌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경쟁은행들보다 광고가 약하다’는 지적과 ‘류 선수의 부친이 농협 고객’이라는 정보를 직원들과의 대화 시간에 듣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필요하면 경쟁 은행에서도 배워야”
임 회장의 귀는 농협금융 내부로만 열려 있는 게 아니다. 회사 바깥에서 농협금융에 대한 얘기도 주의 깊게 듣는다. 보다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부터 이례적으로 다른 은행 리스크 담당 임원들을 만나 농협금융의 장단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경쟁사들에 비해 리스크 관리 체계가 취약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가 취한 해법은 리스크 관리 담당 직원들을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경쟁은행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리스크 관리에서 앞선 경쟁사에서 하나라도 더 배워오라는 취지였다. (→ 외부에도 열린 귀)
자존심 강한 은행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노하우가 실무에 적용되고 성과가 나타나자 불만은 사그라들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취임 직후인 2분기 말 2.28%에서 3분기 말 1.92%로 0.36%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수지도 개선돼 2분기 399억원 순손실에서 3분기 1022억원 순이익으로 전환했다.
임 회장 자신도 리스크 관리를 우선과제로 삼았다. 조선·건설·해운 등 3대 경기 민감 업종의 거액 부실 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직접 주재한 데서 잘 드러난다. 여신전문인력을 확충한 뒤 인센티브를 늘리고, 금리운용체계도 건전 여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이 같은 내실 다지기는 현안인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농협금융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선 100%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임 회장은 8월 중앙회 이사회에서 직접 인수 필요성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임 회장의 신중한 행보와 경청하는 자세를 주목해 온 조합장들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큰 박수로 그를 지지했다.
목소리 낼 땐 확실하게 … 커진 존재감
‘덩치만 큰 곰’이라는 평가를 받던 농협금융은 임 회장 취임 후 여러 이슈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협금융은 한진해운이 추진했던 4억달러 규모의 영구채 발행에 필요한 보증 지원에 앞장서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다른 은행이나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행보를 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금융당국에 대한 발언권도 세졌다. 7월 정부가 STX조선해양에 나간 여신을 정상 바로 아래 등급인 ‘요주의’로 분류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도 임 회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질적인 적자 상태인 농협은행의 수익방어를 위해 임 회장이 뛰었다는 후문이다.
농협금융 내부의 의견 조율도 일사불란해졌다. 최근엔 농협중앙회가 관리하던 농협은행의 정보기술(IT) 업무를 농협은행으로 옮긴 데서 잘 드러난다. 이 역시 중앙회와의 대화를 통한 공감대가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큰 덩치 못지않게 금융시장 내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임 회장의 다음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