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있는 전인아 씨. 학고재갤러리 제공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있는 전인아 씨. 학고재갤러리 제공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과학자건 예술가건 가장 관심을 갖는 영역 중 하나다. 과학자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그것을 규명하려는 데 비해 예술가는 그 불가해한 영역을 상상력을 동원해 더듬어나간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오는 29일까지 개인전 ‘합(合)-매트릭스(Matrix)’전을 여는 전인아 씨(43)의 창작 열정 역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셸 오브 스톡(Shell of stock)’ 시리즈와 ‘2013 매트릭스’ 시리즈 83점에는 그런 의도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2007년부터 세포처럼 유동적이고 분열하는 듯한 모습의 추상적 형상을 그려온 전씨의 작품은 결과물만 보면 추상화에 가깝지만 그 과정은 사실적 재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셸 오브 스톡’ 연작에서 보듯이 작가는 크고 작은 조개의 형상을 겹쳐 배열하거나 병렬했다.

그러나 전체적 인상은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한 중첩된 레이어의 이미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형태는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대개의 것들은 군데군데 지워져 추상적 형태에 가깝다.

그것들은 마치 대지의 자궁에서 생명체가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다이내믹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궁 기원 등의 의미를 지닌 ‘매트릭스’라는 용어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13 매트릭스’ 연작에서는 새의 형상을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는 자유로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신화나 설화에서 창조주와 인간을 매개하는 전령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곳곳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여성성을 은유한다.

여백의 맛이 훨씬 강조된 것도 그런 생명 탄생의 바탕이 되는 광활한 우주공간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다. 미술평론가 최태만 씨가 전씨의 여백을 “해방의 공간이자 매트릭스로부터 뿜어 나오는 생명의 숨결이 미칠 수 있는 호흡의 영역”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씨는 간송미술관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의 손녀로 서울대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나왔다. 대학 졸업 후 전자업체 디자이너가 됐지만 화가의 길이 자신의 숙명임을 깨닫고 화필을 다시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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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