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까르띠에·오메가 '독보적 3강'
메이드 인 스위스(Made in Switzerland). ‘스위스에서 만들었다’는 짧고 무미건조한 뜻이다. 그러나 시계에서만큼은 품질의 보증수표로 통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업체들은 그래서 부품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뒤 조립만 스위스에서 하고 ‘메이드 인 스위스’란 문구를 새겨넣는 ‘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메이드 인 스위스’란 문구가 갖는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요즘 스위스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스위스 시계의 브랜드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스위스의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인 BV4는 지난해부터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스위스 상위 20개 시계 제조업체를 골라 브랜드 인지도, 이미지, 경제적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브랜드 가치 순위를 매긴 것이다.

명품시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상위 브랜드가 어디인지, 그리고 뜨는 브랜드와 지는 브랜드는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BV4가 최근 내놓은 올해 조사 결과에서 스위스 상위 20개 시계업체의 브랜드 가치는 총 217억3900만스위스프랑(약 25조7100억원)으로 평가됐다. 작년 첫 조사 때 207억4500만스위스프랑(약 24조3500억원)보다 5% 뛰었다.

롤렉스·까르띠에·오메가 '독보적 3강'
업체별 순위를 보면 부동의 1위는 역시 ‘롤렉스’다. 브랜드 가치가 작년보다 11% 뛰면서 50억7400만스위스프랑(약 6조원)에 달했다. 2위는 ‘까르띠에’로 지난해보다 8% 오른 29억4200만스위스프랑(약 3조4800억원), 3위는 ‘오메가’로 역시 8% 상승한 29억500만스위스프랑(약 3조430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세 브랜드는 4위 이하 업체들과 상당한 격차를 벌리면서 탄탄한 3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물시계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3대 브랜드로 꼽힌다.

이어 ‘파텍필립’ ‘스와치’ ‘태그호이어’ ‘브레게’ ‘IWC’ ‘론진’ ‘쇼파드’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IWC는 작년보다 브랜드 가치가 4% 오른 것으로 평가돼 순위가 10위에서 8위로 두 계단 뛰었다. 중저가를 내세운 대중적 시계 브랜드인 스와치도 브랜드 가치를 지난해보다 10% 높이면서 약진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해당 브랜드가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를 반영한 ‘디지털 브랜드 가치’에선 롤렉스, 스와치, 오메가가 상위권에 올랐고 브레게, 파텍필립, 지라드페르고 등도 선전했다.

BV4는 브랜드 가치가 많이 떨어진 시계로 ‘보메메르시에’(19위)와 ‘지라드페르고’(17위)를 꼽았다. 보메메르시에의 경우 1년 전보다 7% 하락한 3억1400만스위스프랑(약 3710억원)을 기록하면서 ‘위블로’(18위)와 순위가 역전됐다. 위블로의 브랜드가치는 10% 상승한 3억1700만스위스프랑(약 3748억원)으로 평가됐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리치몬트그룹 본사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부 브랜드를 구조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보메메르시에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법인 리치몬트코리아는 이미 보메메르시에 사업을 완전히 접고 국내 한 수입업체에 판권을 넘겼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합리적인 가격대를 내세웠으나 글로벌 차원에서 판매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명품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위블로의 약진은 대대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스위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구입한 세라믹을 쓰기도 하는 등 부품과 기술력 측면에서 명품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날 선 비판도 적지 않게 받는다. 기술력이나 품질보다는 월드컵 축구, 포뮬러원,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등 스포츠 후원을 통해 ‘남성 시계의 신흥 강자’라는 이미지를 단기간에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