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주문실수가 발생한 한맥투자증권 서울 여의도 본사에 13일 한 투자자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규모 주문실수가 발생한 한맥투자증권 서울 여의도 본사에 13일 한 투자자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오전 9시, 장 시작과 함께 서울 여의도 한맥투자증권 파생운용본부 DMA(초고속 직접주문전용선) 계좌에서 시장과 크게 차이가 나는 가격으로 코스피200지수선물 1종목과 옵션 42종목에 총 4만1336건의 주문이 나갔다. 깜짝 놀란 한맥투자증권 직원이 부랴부랴 주문을 취소했지만 사람의 손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나간 4만1336건의 주문을 되돌릴 순 없었다.

채 1분도 안돼 3만7902건, 5만7934계약이 체결됐다. 비싼 가격에 옵션매수 계약이, 싼 가격에 옵션매도 계약이 이뤄져 한맥투자증권은 자본금(268억원)보다 많은 약 460억원의 손실이 생겼다.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결제 시한인 13일 오후 4시까지 거래소에 결제대금 570억원을 납부하지 못해 파산위기를 맞았다.

주문실수 한방에…한맥證 사실상 파산

○“주문실수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한맥투자증권을 파산위기로 몰아 넣은 코스피200옵션 주문실수 사건 여파로 ‘대규모 파생상품 주문실수’ 공포가 금융투자업계를 짓누르고 있다. 대규모 파생상품 주문은 사전에 주문조건을 걸어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알고리즘)을 통해 나가기 때문에, 주문실수나 알고리즘 오류가 생겨 주문이 잘못 체결되면 순식간에 100억원이 넘는 대형 손실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본금이 적은 중소형 증권사에 파생상품 주문금액 한도에 제한을 두거나 △시장가격의 일정 범위를 벗어난 주문에 대해선 주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한맥투자증권의 ‘착오거래 발생현황’ 경위서에 따르면 사건의 원인은 주문을 낸 컴퓨터의 ‘이자율 설정 오류’다. 이자율 계산 항목에 ‘잔존일수/365’가 입력돼야 하는데 ‘잔존일수/0’으로 입력됐다. 이에 따라 컴퓨터는 모든 코스피200옵션 종목에서 차익실현이 가능하다고 인식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에 총 4만1336건의 주문이 나갔다. 한맥투자증권 관계자는 “입력 실수는 맞다”며 “직원이 이자율 계산식을 잘못 입력했는지 컴퓨터에 오류가 난 것인지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언제나 이 같은 알고리즘 오류와 주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은 많게는 수십만건의 대규모 파생상품 주문을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낸다. DMA라는 초고속 직접주문전용선을 통해 순식간에 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에 알고리즘 오류로 나간 주문 실수를 쉽게 돌이킬 수 없다.

지난 1월 홍콩계 헤지펀드 이클립스퓨처스가 KB투자증권을 통해 코스피200선물 주문을 하다가 실수해 190억원대 손실이 발생한 사건과 지난 6월 KTB투자증권의 코스피200선물 약 7200계약 주문실수 건도 알고리즘매매와 연관돼 있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수익 확보를 위해 자기자금으로 무리하게 파생상품매매에 나서고 있는 것도 문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맥투자증권도 영업손실이 나자 파생상품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자기자금으로 거래에 나섰다가 대규모 손실이 났다”고 말했다.

○소형사에 파생상품 주문금액 제한


한국거래소는 KB투자증권과 KTB투자증권에서 파생상품 주문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7월 파생상품시장 업무규정과 시행세칙을 개정해 ‘알고리즘거래 위험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0월부터 알고리즘거래계좌 사전 신고제를 도입했고 ‘장중 위험노출액한도’는 예탁금의 10배에서 5배로 축소했다. 내년 2월부터는 대규모 미체결주문을 일괄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킬 스위치’ 제도도 도입한다. 그러나 한맥투자증권 사건처럼 주문이 일단 체결돼버리면 ‘킬 스위치’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본금이 적거나 자본잠식 상황에 있는 증권사와 선물사 등에 주문금액 한도를 두거나, 시장가격의 일정 범위를 벗어난 주문에 제한을 두는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계 증권사엔 사후증거금 대신 사전증거금을 받아 미리 낸 증거금의 일정 범위만큼만 주문을 내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제대금 거래소가 대신 납부

한맥투자증권은 결제 마감 시한인 이날 오후 4시까지 대금을 거래소에 내지 못했다. 한맥투자증권은 증권사들에 공문을 보내 “명백한 착오거래이고 거래를 취소할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결제대금을 지급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거래소도 증권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거래소는 일단 결제적립금으로 결제대금을 대신 내고 한맥투자증권에 ‘구상권’을 행사해 다시 받을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한맥투자증권에 검사인력을 보내 사건 발생 원인과 재무상황 등을 다음주까지 조사할 계획이다 .

황정수/허란 기자 hjs@hankyung.com

■ 91년 설립 선물전문 증권사, 한맥증권은 어떤 회사

한맥투자증권은 선물회사에서 전환한 증권사다. 1991년 4월 설립된 진로그룹 계열 우신선물이 모태다. 1998년 회사 이름을 한맥선물로 바꾼 데 이어 2009년 종합증권사 인가를 받아 한맥투자증권으로 다시 변경했다. 증권사 타이틀을 갖게 됐지만, 업무의 중심은 여전히 선물·옵션 거래였다. 지난 3월 기준 자본총액은 203억원이다. 지난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38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최대주주는 김치근 부회장과 김범상 대표로 지분을 17.17%씩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