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재수생 아들을 위한 기도
요즘 대학입시를 진행해가면서 다시 마음에 와 닿는 기도문이 있다. “그(아들)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소서. 미래를 바라보면서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소서.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소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6·25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쓴 ‘아들을 위한 기도문’이다.

자녀의 대학 진학을 고심해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한가한 기도일 것이다. 아직도 보내고 싶은 대학 경쟁률은 하늘을 찌르는데 말이다. 대학 진학 후에 생각해도 충분할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전장을 누볐던 장군의 기도문은 더 긴 안목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며칠 전, 대학진학 재수생을 둔 한 부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은 얘기를 들었다. 고교때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아들이 재수에 실패하면서 군에 자원입대한 것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신을 두고 일단 대학보다 군대를 선택해 간 것이다. 자신을 혹독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자신과 세상을 이기는 훈련과정에 돌입한 것이다. 그 아들의 건승을 빈다. 분명 남다른 각오로 이 훈련을 거쳐서 탁월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이루어냈고, 세계경영을 논할 수 있는 지위도 갖게 되었다. 교육강국을 자처할 만큼 대학진학률도 세계 1위이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이들도 그에 걸맞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이 요구된다. 미래사회를 이끌어가겠다는 ‘주도성’을 가지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좇아가기보다는 ‘역사성’을 내다보아야 한다. 결국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도움이 필요한 국제사회에까지 기꺼이 뛰어들 ‘창의적 야성(野性)’을 키워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저 전수받은 지식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해갈 수 있도록 능동적인 참여의 길을 여기, 대학에서 터줄 수 있겠는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을 훈련하고 타인을 포용할 마음과 태도를 기를 수 있겠는가. 온유함을 무기로 이 거친 세상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선포할 수 있겠는가. 대학은 무어라 답할 것인가. 군대에 간 그 용감한 아들에게 어떤 기도로 격려하겠는가.

황선혜 < 숙명여대 총장 hwangshp@s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