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으로 연말 한 턱 쏘던 시절 다시올까? 새해엔 '앵무새'에서 '빨대'가 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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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맨 송년 생생토크
비오는 날 채권영업 더 잘돼…측은한 표정 지으면 통하니까
대리급까지도 명퇴대상 올라…안전지대 사라져 우울하기도
금투업계 부부 근무는 위험…업종 서로 달라야 위험 헤지
비오는 날 채권영업 더 잘돼…측은한 표정 지으면 통하니까
대리급까지도 명퇴대상 올라…안전지대 사라져 우울하기도
금투업계 부부 근무는 위험…업종 서로 달라야 위험 헤지
증권맨들에게는 힘들다 못해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한 해였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난 탓에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던 증권사의 수익이 반토막났다.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올 들어 ‘여의도’를 떠난 증권맨은 줄잡아 1600여명. 전체 증권사 직원의 4%에 육박하는 숫자다.
동양증권은 계열사의 부실 CP(기업어음)·회사채 판매로 된서리를 맞았다. 한맥투자증권은 단 1분간의 주문 실수로 자본금의 두 배 가까운 돈을 날렸다. 살아남은 증권맨들도 연말이 편안할 리 없다. 지난 19일 밤 일선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과장급 증권맨 5명이 서울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에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두둑한 인센티브는 추억일 뿐
▷김도형 한화투자증권 주식영업팀 과장(법인영업·이하 김)=“예전에는 증권맨이 좋은 직업이었어요. 2006~2007년 지점에 있을 때 코스피지수가 1200~1300대였고 지수도 꾸준히 올랐어요. 영업도 순조로웠고 인센티브도 수천만원씩 받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신문에 모 증권사 직원이 수십억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는 기사가 나갔던 게 기억나네요. 저도 친구들한테 술 무척 많이 샀어요. 이제는 추억이네요.”
▷김성희 신한금융투자 PWM태평로센터 과장(자산관리·이하 희)=“맞아요. 2006년, 2007년이 황금기였죠. 그러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면서 세상이 바뀌었죠.”
▷김=“말도 마세요. 매일 출근해서 고객들에게 ‘죄송합니다’ 하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입사해서 매일 오르는 것만 보다 폭락을 경험하니까 믿기지가 않았어요. 올해는 거래 자체가 없어 재미 없기는 한데 그래도 그때보다는 상황이 낫죠.”
▷조형진 우리투자증권 에쿼티 트레이딩본부 과장(트레이딩·이하 조)=“작년 폐장일 코스피지수 종가가 1997.05였고 오늘이 1975.65(19일 종가)니까 거의 시장이 안 움직였네요. 트레이딩하는 우리팀은 10월까지 꽤 잘했어요. 수익 잘냈다고 칭찬받고 워크숍도 제주도로 다녀왔는데. 연말 되면서 다시 급격히 무너졌네요. 씁쓸합니다.”
고객 마음 돌리려 수입차 빌려 공항 의전
▷이기우 KB투자증권 DCM2팀 과장(기업금융·이하 이)=“연말은 고객사와의 술자리 때문에 힘들어요. 어제도 새벽 4시에 들어갔네요.”
▷희=“돈 많은 개인 고객을 상대하는 PB센터는 술 자리는 많이 없지만 그래도 고민이 많아요. 제일 신경쓰는 것은 선물이에요. 돈 많은 고객도 선물은 마다하지 않죠. 우리 지점 히트작은 한방울씩 내려 만든 더치커피 원액이었답니다. 업계 최강의 선물은 공항 의전 서비스예요. VIP 고객이 해외 출장갈 때 기사 딸린 수입차를 빌려 공항에 모시고 갔다오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보통 외주 업체를 쓰는데 단가가 40만원 나온다네요.”
▷김=“예전 지점에 있을 때도 비슷했어요. 연말이나 명절 때 양말 같은 선물을 준비하는데 장 마감 직전 지점에 들러 선물만 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
▷이=“저는 선물로 프로야구 티켓을 많이 활용해요. 두산과 LG전 같은 빅게임 티켓을 기관 담당자들한테 주면 반응이 좋습니다.”
▷김=“한화 계열사라 한화전 티켓이 많아요. 문제는 뿌려도 아무도 게임에 안 온다는 것이죠. 꼴지라서 그런지 한화 팬이 없어서 그런지(웃음)….”
화려했던 증권맨, 이젠 맨땅에 헤딩
▷이=“저는 채권 영업을 주로 하는데 바닥이 좁아요. 신규 기관을 ‘맨땅에 헤딩’ 식으로 뚫어야 하는데 어디에 가든 첫마디가 ‘우리는 거래 안해요. 오실 필요 없어요’예요. 매일 찾아가서 인사하고 퇴짜맞고 6개월쯤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한 번 앉아봐’라는 말이 나오죠. 학연 지연도 중요해요. 이 바닥에서는 고려대, ROTC, 부산대 인맥 세 가지가 먹힙니다.”
▷김=“저 같은 영업 쪽 직원들은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을 좋아해요. 비를 쫄딱 맞은 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문전박대가 덜하죠. 매일 찾아가 리서치 자료 올려 놓고 90도로 허리 꺾어 인사하고 나오는 게 제 일이에요. 이런 것 자존심 상해하면 일 못해요.”
▷최경우 하이투자증권 교대역지점 차장(지점영업·이하 최)=“제 고객은 주로 투자자문사예요. 자문사에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게 주 업무인데 한맥투자증권 거래 사고가 터지고 많이 속상했어요. 언론에서 시스템 트레이딩은 안 된다고 때리니까 영업이 더 힘들어졌어요.”
▷김=“증권사 영업맨은 세 종류예요. 그냥 자료만 놓고 가는 ‘택배기사’, 애널리스트의 논리를 그대로 풀어 놓는 ‘앵무새’, 투자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물어오는 ‘빨대’. 저는 솔직히 앵무새 단계인데 세 번째 단계까지 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저는 트레이딩이라 영업 스트레스가 없는 대신 성적표 공포증이 있어요. 내가 팀에서, 회사에서 몇 등했는지가 회사 시스템에 매일 숫자로 나와요. 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아요.”
▷희=“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 하면 내가 지점에서 몇 등인지, 회사 전체에서 몇 등인지가 일 기준, 월 기준, 연 기준으로 알려줍니다. 모니터 화면을 쥐어박고 싶죠.”
대리급도 명퇴 대상, 구조조정 불안감
▷최=“다른 것보다 구조조정이 무서워요. 심지어 대리까지도 희망퇴직 대상이라니까요. 안전지대가 아예 없어요.”
▷희=“그나마 PB센터 쪽이 사정이 낫네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내려오면서 자산가들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많이 했어요. 그분들이 세금 피한다고 브라질 국채를 많이 사갔다는 점은 마음에 걸리지만요.”
▷최=“‘옆집’이 망가질 때도 곤혹스러워요. 동양증권 사태 때 위에서 가두 캠페인 지시가 내려 왔어요. 동양증권 앞에서 캠페인을 벌여 계좌를 빼오라는 것이죠.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어떻게 그럽니까. 직원들이 못하겠다고 우기고 우겨서 가까스로 안 하고 넘어갔네요.”
▷김=“부부가 금융투자 업계에 함께 있으면 안 좋아요. 한 명이 증권이면 한 명은 제조업이어야 ‘위험 헤지’가 돼요.”
새해에는 반전을 믿고 싶다
▷희=“새해에는 주가도 뛰고 좋은 상품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고객도 돈 벌고 나도 인센티브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요. 그런데 내년에 주가가 과연 뛸까요?”
▷조=“저도 좋은 얘기만 하고 싶은데. 외국인과 기관이 한국 주식 외면하고, 환율도 안 좋고,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김=“그래도 반전이라는 게 있으니까. 국내 자산가들이 묵혀 놓은 자금이 꽤 돼요. 그 자금이 좀 나와주면 얘기가 달라질지 몰라요.”
▷이=“그래도 올해보다는 낫겠죠. 저는 그렇게 믿고 싶네요.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형석/황정수/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
동양증권은 계열사의 부실 CP(기업어음)·회사채 판매로 된서리를 맞았다. 한맥투자증권은 단 1분간의 주문 실수로 자본금의 두 배 가까운 돈을 날렸다. 살아남은 증권맨들도 연말이 편안할 리 없다. 지난 19일 밤 일선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과장급 증권맨 5명이 서울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에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두둑한 인센티브는 추억일 뿐
▷김도형 한화투자증권 주식영업팀 과장(법인영업·이하 김)=“예전에는 증권맨이 좋은 직업이었어요. 2006~2007년 지점에 있을 때 코스피지수가 1200~1300대였고 지수도 꾸준히 올랐어요. 영업도 순조로웠고 인센티브도 수천만원씩 받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신문에 모 증권사 직원이 수십억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는 기사가 나갔던 게 기억나네요. 저도 친구들한테 술 무척 많이 샀어요. 이제는 추억이네요.”
▷김성희 신한금융투자 PWM태평로센터 과장(자산관리·이하 희)=“맞아요. 2006년, 2007년이 황금기였죠. 그러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면서 세상이 바뀌었죠.”
▷김=“말도 마세요. 매일 출근해서 고객들에게 ‘죄송합니다’ 하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입사해서 매일 오르는 것만 보다 폭락을 경험하니까 믿기지가 않았어요. 올해는 거래 자체가 없어 재미 없기는 한데 그래도 그때보다는 상황이 낫죠.”
▷조형진 우리투자증권 에쿼티 트레이딩본부 과장(트레이딩·이하 조)=“작년 폐장일 코스피지수 종가가 1997.05였고 오늘이 1975.65(19일 종가)니까 거의 시장이 안 움직였네요. 트레이딩하는 우리팀은 10월까지 꽤 잘했어요. 수익 잘냈다고 칭찬받고 워크숍도 제주도로 다녀왔는데. 연말 되면서 다시 급격히 무너졌네요. 씁쓸합니다.”
고객 마음 돌리려 수입차 빌려 공항 의전
▷이기우 KB투자증권 DCM2팀 과장(기업금융·이하 이)=“연말은 고객사와의 술자리 때문에 힘들어요. 어제도 새벽 4시에 들어갔네요.”
▷희=“돈 많은 개인 고객을 상대하는 PB센터는 술 자리는 많이 없지만 그래도 고민이 많아요. 제일 신경쓰는 것은 선물이에요. 돈 많은 고객도 선물은 마다하지 않죠. 우리 지점 히트작은 한방울씩 내려 만든 더치커피 원액이었답니다. 업계 최강의 선물은 공항 의전 서비스예요. VIP 고객이 해외 출장갈 때 기사 딸린 수입차를 빌려 공항에 모시고 갔다오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보통 외주 업체를 쓰는데 단가가 40만원 나온다네요.”
▷김=“예전 지점에 있을 때도 비슷했어요. 연말이나 명절 때 양말 같은 선물을 준비하는데 장 마감 직전 지점에 들러 선물만 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
▷이=“저는 선물로 프로야구 티켓을 많이 활용해요. 두산과 LG전 같은 빅게임 티켓을 기관 담당자들한테 주면 반응이 좋습니다.”
▷김=“한화 계열사라 한화전 티켓이 많아요. 문제는 뿌려도 아무도 게임에 안 온다는 것이죠. 꼴지라서 그런지 한화 팬이 없어서 그런지(웃음)….”
화려했던 증권맨, 이젠 맨땅에 헤딩
▷이=“저는 채권 영업을 주로 하는데 바닥이 좁아요. 신규 기관을 ‘맨땅에 헤딩’ 식으로 뚫어야 하는데 어디에 가든 첫마디가 ‘우리는 거래 안해요. 오실 필요 없어요’예요. 매일 찾아가서 인사하고 퇴짜맞고 6개월쯤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한 번 앉아봐’라는 말이 나오죠. 학연 지연도 중요해요. 이 바닥에서는 고려대, ROTC, 부산대 인맥 세 가지가 먹힙니다.”
▷김=“저 같은 영업 쪽 직원들은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을 좋아해요. 비를 쫄딱 맞은 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문전박대가 덜하죠. 매일 찾아가 리서치 자료 올려 놓고 90도로 허리 꺾어 인사하고 나오는 게 제 일이에요. 이런 것 자존심 상해하면 일 못해요.”
▷최경우 하이투자증권 교대역지점 차장(지점영업·이하 최)=“제 고객은 주로 투자자문사예요. 자문사에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게 주 업무인데 한맥투자증권 거래 사고가 터지고 많이 속상했어요. 언론에서 시스템 트레이딩은 안 된다고 때리니까 영업이 더 힘들어졌어요.”
▷김=“증권사 영업맨은 세 종류예요. 그냥 자료만 놓고 가는 ‘택배기사’, 애널리스트의 논리를 그대로 풀어 놓는 ‘앵무새’, 투자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물어오는 ‘빨대’. 저는 솔직히 앵무새 단계인데 세 번째 단계까지 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저는 트레이딩이라 영업 스트레스가 없는 대신 성적표 공포증이 있어요. 내가 팀에서, 회사에서 몇 등했는지가 회사 시스템에 매일 숫자로 나와요. 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아요.”
▷희=“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 하면 내가 지점에서 몇 등인지, 회사 전체에서 몇 등인지가 일 기준, 월 기준, 연 기준으로 알려줍니다. 모니터 화면을 쥐어박고 싶죠.”
대리급도 명퇴 대상, 구조조정 불안감
▷최=“다른 것보다 구조조정이 무서워요. 심지어 대리까지도 희망퇴직 대상이라니까요. 안전지대가 아예 없어요.”
▷희=“그나마 PB센터 쪽이 사정이 낫네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내려오면서 자산가들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많이 했어요. 그분들이 세금 피한다고 브라질 국채를 많이 사갔다는 점은 마음에 걸리지만요.”
▷최=“‘옆집’이 망가질 때도 곤혹스러워요. 동양증권 사태 때 위에서 가두 캠페인 지시가 내려 왔어요. 동양증권 앞에서 캠페인을 벌여 계좌를 빼오라는 것이죠.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어떻게 그럽니까. 직원들이 못하겠다고 우기고 우겨서 가까스로 안 하고 넘어갔네요.”
▷김=“부부가 금융투자 업계에 함께 있으면 안 좋아요. 한 명이 증권이면 한 명은 제조업이어야 ‘위험 헤지’가 돼요.”
새해에는 반전을 믿고 싶다
▷희=“새해에는 주가도 뛰고 좋은 상품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고객도 돈 벌고 나도 인센티브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요. 그런데 내년에 주가가 과연 뛸까요?”
▷조=“저도 좋은 얘기만 하고 싶은데. 외국인과 기관이 한국 주식 외면하고, 환율도 안 좋고,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김=“그래도 반전이라는 게 있으니까. 국내 자산가들이 묵혀 놓은 자금이 꽤 돼요. 그 자금이 좀 나와주면 얘기가 달라질지 몰라요.”
▷이=“그래도 올해보다는 낫겠죠. 저는 그렇게 믿고 싶네요.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형석/황정수/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