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교되는 신년사
올해도 높으신 분들의 신년사에는 온갖 종류의 그럴듯한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지표와 체감경기가 다 나아지도록 하겠다는 뜻을 ‘선우후락(先憂後樂: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으로 표현했다. 중국 북송 범중엄의 ‘악양루기’에 나오는 구절인데, 2009년 정운찬 국무총리가 취임 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올해가 청마의 해여서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을 기치로 내걸었다. 공공기관에서도 마불정제(馬不停蹄: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 호시마주(虎視馬走: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말처럼 힘차게 달린다) 등 말띠 관련 사자성어가 많이 나왔다. 1년 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구부려 온 힘을 다한다’는 국궁진력(鞠躬盡力)을 강조했던 것과 비슷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무신불립을 얘기했던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올해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집사광익(集思廣益)’을 새로 내놨다. 교수신문의 올해 사자성어는 불교용어 ‘전미개오(轉迷開悟)’다. ‘미망에서 돌아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인데 매우 어려운 말이다.

모두들 이런 사자성어를 동원해야만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취업포털까지 나서 직장인의 사자성어는 ‘득의지추(得意之秋: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기회)’요, 취업준비생의 사자성어는 ‘교룡득수(蛟龍得水: 좋은 기회를 얻길 바란다)’라고 발표할 정도다.

어떤 이는 정확한 뜻이나 알고 말하는지 의심스럽다.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도 버릴 수 없다. 사자성어 사전을 뒤적이는 보좌진만 헛고생시킨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지도층이 꼭 이런 식으로 ‘무식’을 뽐내야 하나. 알아듣기 힘든 말의 ‘겉멋’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짜 뜻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이에 비해 기업인들의 신년사는 아주 현실적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세계 경제의 회복기에 대비해 ‘계획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삼성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참 비교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