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왼쪽부터),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왜 다시 기업가정신인가’를 주제로 열린 긴급 좌담회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왼쪽부터),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왜 다시 기업가정신인가’를 주제로 열린 긴급 좌담회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창간50-한경 연중기획] "기업은 사람 몸의 '근육'에 해당…정부·국민이 그 중요성 인식못해"
한국경제신문은 연중기획 ‘왜 기업가정신인가’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고 경제가 꿈틀거려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많은 기업인과 경제학자들은 ‘혁신’과 ‘창의’에 기반한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기업가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업가정신을 얘기하면 고리타분한 ‘성장 우선주의’로 치부된다.

다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면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난 8일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사회로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기업가정신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짚어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논의했다.

▷최병일 원장(사회)=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설문조사를 해보니 기업가정신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인색했습니다. 11%의 국민만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기업가정신을 꼽았죠.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일까요.

▷고영하 회장=지금까지 우리는 모방경제를 해왔습니다. 창의적인 혁신을 이뤄내는 기업가정신보다 정부 지원을 받아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남의 것을 모방하는 데 집중했죠. 그렇다 보니 국민이 기업가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기업가가 이뤄낸 부(富)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게 된 것 아닐까요.

▷최 원장=기업가정신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박남규 교수=기업가정신의 본질은 ‘위험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위험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느냐 아니냐로 1등 신랑감 여부를 가늠하는 사회 현상까지 나옵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위험에 도전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이 희박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쉽게 30억~40억원 정도 펀딩(투자)을 받고 그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거죠.

▷최 원장=국제기업가정신연구회가 작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미국 스웨덴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조동근 교수=과거엔 ‘배짱’과 ‘용기’ ‘헝그리정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가 돼야 합니다. 슘페터가 얘기한 것처럼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경각심’이 필요한데 그런 정신이 부족합니다.

▷박 교수=최근 3~4년간 창업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대도 경영대학원에 창업경영 전공과정을 따로 만들었어요. 문제는 창업을 하더라도 판로 개척이 힘들다는 점이죠. 한국에선 B2B(기업 간 거래) 분야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창업의 상당수가 인터넷 기반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업종으로 몰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최 원장=미국에선 구글, 아마존처럼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창업해 성공한 기업이 많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고 회장=아무래도 미국 유럽에 비해 열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제도가 글로벌 트렌드를 못 따라간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수출은 전 세계 7~8위권인데 온라인 수출은 30위권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한국 사람들은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직접구매(직구)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우리 인터넷쇼핑몰에선 ‘직구’를 할 수 없습니다.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거든요. 이런 쓸데없는 규제를 정부가 만들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에선 유능한 인재들이 창업하지 않습니다. 가장 똑똑한 학생들은 고시에 몰리고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하지, 창업은 힘들다고 꺼립니다.

▷최 원장=그런데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에게 창업하라고 무작정 내모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조 교수=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이 몇 %나 되겠습니까. 좁은 문을 통과해야 가능한 일이죠. 그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창업하려고 해도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이 조그만 벤처를 키우는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요. 또 기업이 아니더라도 모든 경제주체가 기업가정신을 일상화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최 원장=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고 회장=기업가정신은 혁신이고, 혁신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입니다. 도전은 실패를 양산할 수밖에 없어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실패의 경험을 존중해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실패하면 곧바로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미국에는 초기 벤처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가 30만명이나 됩니다. 이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벤처에 투자하고 성공할 수 있게 키워주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창업에 도전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엔젤투자자는 500명뿐입니다.

▷조 교수=좋은 제안인데, 미국과 같은 엔젤투자 시스템을 갑자기 만들 수 있을까요.

▷고 회장=실리콘밸리가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 데 60년 걸렸습니다. 차근차근 만들어 가야죠. 그런 시스템이 없으면 ‘신발도 없이 사막을 걸으라’는 내몰기식 창업밖에 안 됩니다. 우선 대기업들이 엔젤투자 역할을 한 뒤 서서히 민간 부문의 엔젤투자를 늘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박 교수=대기업이 엔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벤처 창업자들은 대기업이 투자해주겠다고 하면 두려워합니다. 기술을 빼앗기고 기업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전에 짚어봐야 할 건 좋은 인재들이 공대를 기피한다는 점입니다. 창업의 성공 확률은 20분의 1이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확률은 100분의 1이에요. 그런데 사시 준비하겠다는 자식을 말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대학 입시에서도 의대, 한의대 정원이 다 찬 다음에야 공대 정원이 채워집니다.

▷최 원장=창업을 하지 않는 이유 중에 ‘기업해서 성공해봤자 뭐하겠느냐’는 인식도 있지 않나요.

▷박 교수=기업을 경영해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정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아직 그런 정의나 합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존경하고 인정해주는 문화를 시급히 만들어야 합니다.

▷조 교수=자유주의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얻은 부는 해당 기업가가 가져가는 게 타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이해관계자들이 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누군가 부를 쌓으면 주변에서 ‘그럼 내 몫은 어디 있냐’고 요구하죠.

▷최 원장=교육시스템 문제도 한번 짚어보죠.

▷고 회장=모방경제 시대의 교육구조를 확 바꿔야 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찾아주는 교육으로 가야 하죠. 국어·영어·수학 책만 달달 외우는 능력만 키우는 교육은 더 이상 안 됩니다.

▷박 교수=중·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의 절반이 자고 있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대학에서도 지식 전달에 치중하지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의대로 몰려가는데, 의대생들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바이오 분야 창업에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교육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최 원장=맞는 말입니다. 미국 대학의 비즈니스스쿨 ‘톱10’에선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과정이 173개나 되는데 한국은 24개밖에 안 됩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는 곳은 드물죠.

▷고 회장=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생들의 진로를 정해줍니다. 그 이전까지 음악 미술 과학 등 모든 교육을 시켜본 뒤 적성을 찾아주는 거죠. 그래서 대학 대신 직업학교에 가는 학생이 많습니다. 경제대국 독일을 이끄는 다양성을 갖춘 인재들이 그렇게 양성되는 것이죠.

▷조 교수=기업이 사람 몸으로 치면 ‘근육’인데, 정부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자신들의 휘하나 관리 대상으로만 보죠. 아직도 정부가 (기업을)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19세기적 인식을 갖는 것 자체가 비극입니다.

■ 좌담회 참석자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사회)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 특별취재팀=이건호 팀장(산업부 차장), 이태명·정인설(산업부), 이태훈·전예진(정치부), 김유미(경제부), 박신영(금융부), 정영효(증권부), 김병근(중소기업부), 심성미(IT과학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

정리=심성미/이태명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