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이’는 경상도에서 어머니를 부를 때 통상 쓰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 속에 온갖 감정과 마음이 녹아 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어리광과 심지어 짜증까지 때와 분위기에 따라 그 색깔과 의미가 자유자재로 바뀐다.

[한경에세이] "어머이"
새끼 새는 안에서 연약한 부리로 알을 쪼고, 어미 새는 밖에서 그 지점을 혼신의 힘으로 쪼아 생명을 탄생시키는 ‘유레카 모멘트’다. 하지만 내 처지는 아무래도 ‘졸탁동시’(卒啄同時)쯤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힘 넘치고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우리 형제지만 막상 구순이 넘고 몇 년째 병마와 치매로 싸우고 계신 어머이 앞에선 정말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어서다. 의술 타령이나 하며 안팎으로 의료진을 쪼아(?) 애꿎게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송장개구리는 겨울엔 스스로 몸을 얼려 혹한기를 넘기고, 봄엔 스스로를 녹여 다시 소생한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는 우리는 막상 어머이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기술 하나 갖고 있질 못하다. 기실 송장개구리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아버님을 일찍 보내신 어머이는 내 대학 시절, 그렇게나 열심히 ‘반야심경’을 외우셨다. 그 뜻을 다 아실 리 없었겠지만 글자와 리듬만으로 완벽하게 암기하신 터. 아마도 그 큰 공허함과 어려움을 이겨내려던 것이었으리라. 막내인 나는 ‘에세이 반야심경’이란 책을 사서 때론 막걸리와 노가리를 곁들여, 때론 굿거리장단 섞어가며 그 뜻을 알려드리려 애쓰곤 했다.

더위가 유난했던 지난 여름, 혹시 감기라도 걸리실까봐, 약 부작용이라도 생기실까봐 병실 에어컨도 제대로 켜드리지 못했다. 온 몸에 난 두드러기와 가려움증으로 힘들어하는 어머이를 보면서도 말이다. 또 가을엔 낙엽처럼 떨어지려는 어머이 모습을 보며 지독히도 쓸쓸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올겨울엔 그 미운 추위가 왜 그렇게도 빨리 왔던가. 어머이 유일한 호사(豪奢)인 ‘휠체어관광’-휠체어로 병원 돌면서 사람 구경하기, 화분의 꽃 보기-조차 빼앗아 가버렸다. 외출이 가능할 땐 간간이 ‘그린티라떼’ 한 방울이라도 드실 수 있었는데….


[한경에세이] "어머이"
그리스인들은 진실의 반대를 거짓이 아니고 ‘망각’이라 했던가. 내가 지금 망각이라는 거짓에 올라타 사그라져 가는 어머이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이! 그래도 그 모진 세월 견디시고 이렇게 다시 세배라도 드릴 수 있게 해주셔서 참말로 감사합니데이~.”

강호갑 <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khg@ahpe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