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통유리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서울 풍경 덕분일까. 서울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도 도심을 떠나 잠시 휴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남산을 품은 햇살이 그대로 쏟아지는 통유리와 새하얀 벽면, 서로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 20~30대 젊은 셰프들이 서빙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사전 지식 없이 갔더라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웬만한 호텔 스카이라운지 못지않다.

서울 남산에 걸터앉은 모던 한식당 ‘품 서울’의 첫인상은 이랬다. 품 서울은 조선 양반들이 먹던 반가음식(班家飮食)을 지극히 서구적 방식인 코스 요리로 선보인다. 신선한 재료와 고급스런 맛은 기본이고, 음식을 담아내는 법과 식당 인테리어에서도 ‘보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기업 임원들의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1) 품 서울 입구 (2) 격식 갖춘 테이블 세팅
(1) 품 서울 입구 (2) 격식 갖춘 테이블 세팅
품 서울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 대표와 한국 궁중음식 전수자 한복진 씨, 전문 경영인 황건중 씨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식당이다. 해외에 진출할 한국 식당의 모델을 실험하기 위해서다. 2008년 12월25일 열었으니 만 5년을 넘겼다.

이들의 음식은 서양적 요소를 섞은 퓨전 한식이 아니라 정통 한식이다. 따라주는 물도 우엉이나 검은콩을 달여 구수한 한국의 맛을 냈다. 찬 것은 차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즐길 수 있도록 코스로 제공된다. 노승혁 매니저는 “예약의 대부분이 비즈니스 미팅이고 외국계 회사에서 특히 많이 온다”고 말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장·차관들도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 자주 찾는 곳이다.
(3) 유명 도예가의 그릇 (4) 점심메뉴 ‘품격상’
(3) 유명 도예가의 그릇 (4) 점심메뉴 ‘품격상’
품 서울은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된다. ‘오늘 뭐 먹지’ 고민하다 휙 갈 수 없다는 말이다. 하루 전까지 받은 예약 물량만큼만 전국 각지에서 식재료를 공수해 온다. 또 매달 1일 코스별 메뉴 구성을 조금씩 바꾼다. 그달의 제철재료를 사용해 최상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봄에는 승기악탕, 여름엔 민어감정, 가을엔 자연송이구이, 겨울엔 전복굴전골 같은 계절 진미를 내놓는다.

코스 선택은 간단하다. 점심으로는 각각 6단계 요리가 나오는 품위상(5만원)과 품격상(7만원)이 있다. 저녁으론 8단계짜리 위품상(10만원)부터 9단계의 기품상(15만원), 12단계의 상품상(25만원) 중 고를 수 있다. 채식주의자용 코스도 따로 있다.

(5) 석류 만두탕 (6) 홍시소스 죽순채
(5) 석류 만두탕 (6) 홍시소스 죽순채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우묵한 상자가 놓였다. 열어보니 주전부리인 대추와 구운 잣이다. 이어 유자차를 담은 고운 청자빛깔 잔이 네모난 받침대에 얹혀 나왔다. 만두를 석류 모양으로 예쁘게 빚어 끓여낸 ‘석류 만두탕’,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홍시 소스를 드레싱으로 얹은 ‘홍시소스 죽순채’, 채끝 등심살과 갈빗살을 반반씩 섞은 ‘떡갈비와 동치미’ 등 나오는 음식마다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갈비찜’의 살을 모두 발라 뼈 위에 예쁘게 담는 등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요리는 이한정 이창하 문지영 등 유명 도자기 작가의 작품에 담겨 나온다. 마음에 드는 그릇은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한층 걸어 올라가면 옥상이 나온다. 유리창을 통해 봤던 서울 풍경이 더욱 시원하게 펼쳐져 마음이 개운해진다. 남산타워도 보인다. 옥상에는 크기가 다른 장독이 10여개쯤 옹기종기 모여 있다. 품 서울에서 실제 사용하는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단다.

품 서울은 모든 직원이 셰프다. 정기적으로 주방과 홀을 바꿔가며 맡는다. 음식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누구한테 물어보든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품 서울이 유명해지면서 대기업 계열 외식업체나 호텔 관계자들이 ‘손님인 척’ 와서 정보를 캐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노 매니저는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나 질문 몇 가지만 봐도 일반 고객인지 아닌지 다 안다”며 “그래도 모든 질문에는 성실히 답해드리고 있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