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소금장수로 위장해 저를 구출해 주세요”

지난달 배모씨(66)에게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14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아들 김모씨(40)였다. 2000년 가출한 아들이 쓴 편지의 내용은 기가 막혔다. 편지에는 김씨가 전남의 한 외딴섬 염전에 갇혀 강제노역을 하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2012년 7월 전남 신안군의 한 외딴섬에 들어왔다. 그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식사와 잠자리였다. 가출 이후 공사장을 떠돌며 생활하던 김씨에게 2012년 여름 직업소개소 직원 이모씨(63)가 다가왔다. 그는 “숙식와 월급을 제공해 줄 테니 광주로 가자”고 말했다. 김씨는 바로 다음날 이씨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이씨는 김씨를 광주가 아닌 목포로 데려갔고 여기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섬에 그를 내려줬다. 그렇게 김씨는 단돈 100만원에 염전 운영자 홍모씨(48)에게 넘겨졌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 염전에는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가 있었다. 채모씨(48) 역시 직업소개소 직원의 식사 두끼에 넘어가 이 외딴섬에 팔려왔다. 채씨는 이 염전에서 무려 5년간을 살았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들은 막대했다. 그들은 하루 4시간 정도의 잠을 자면서 아침 저녁으로 뜨거운 태양아래 염전에서 소금 내는 일부터 벼농사, 집짓기 공사 등 홍씨의 집안 잡일을 해야했다. 월급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이곳에선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씨는 채씨와 함께 2012년 8월 탈출을 결심했다. 하지만 탈출은 실패했다. 마을 주민들 역시 홍씨와 같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홍씨는 “한 번만 더 도망치면 칼침을 놓겠다”고 협박했다.

김씨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편지’였다. 그는 매일 밤마다 홍씨 몰래 종이에 몇 글자씩을 적어 편지를 써서 품안에 숨겨놓고 다녔다. 그리고 올해 1월 읍내에 이발을 하러 갈 기회가 생겼다. 그는 주민들의 눈을 피해 우체국에 들러 어머니에게 편지를 발송했다. 김씨의 고통과 눈물이 담긴 편지는 이렇게 배씨의 손에 전해졌다.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은 이같은 사연이 담긴 배씨의 제보로 염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편지에 적힌 주소지에서 소금구매업자로 위장해 염전에서 노역 중이던 김씨를 구출했다. 김씨를 구출할 당시 숙소에 있던 채씨는 “나는 자진해서 염전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채씨 역시 2008년 실종신고 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다시 수사팀을 현지로 급파해 채씨의 구출에도 성공했다. 경찰은 이들을 유인해 섬으로 팔아넘긴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씨와 이들을 넘겨받아 강제노동 시킨 염전업주 홍씨를 형사입건했고, 보강수사 이후 신병처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