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회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세상
정치인처럼 ‘사회통합’이란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정치권이 사회통합을 실행하겠다고 내놓는 정책방향이야말로 사회분열로 가는 길이다. 그들은 사회통합을 분화된 계층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대표적인 접근법이 사회를 경제적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방안이다. 경제적 강자와 약자가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방법은 강자에게서 뺏고, 약자에게 나눠주는 정책이다.

정치인은 사회통합을 위한다는 목표 아래 ‘양극화’란 용어로 사회구성원을 대립구조로 만들고, ‘경제민주화’로 포장한 정책으로 경제적 약자의 표를 얻으려 한다. 대기업과 부자 등 소수의 경제적 강자들은 소수란 점 때문에 정치에선 약자이므로, 이들을 착취하는 세금 및 규제정책은 반대편 다수의 표를 얻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지난 연말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광석화처럼 입법화되고, 이런 비정상이 민주주의 다수결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셈법에서 가능한 일이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경제규제도 엄청나다. 대기업 총수에겐 배임죄라는 예측불가한 형벌이 옥죄고 있어 도전과 혁신이라는 기업가정신을 죽이고 있다. 이런 정책으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 착취적 정책으론 경제성장이 불가능하고, 미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사회분열적이며 착취적 정책을 개발하는 이유는 정권유지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절대 공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개인과 기업처럼 사적이익을 위해 일한다. 단지 공직이란 이름 때문에 공익을 위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론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선택할 뿐이므로 착취적 정책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인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높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도 정치인이 되는 순간, 착취적 정책들을 내놓는 사례는 매우 많다. 결국 정치인 개인의 자질과 도덕문제가 아니고, 정치구조의 문제다. 정치인에게 사적이익이란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을 잡는 것이다. 여기에 목표를 두고 유리한 정책을 선택하게 되면서 정책방향은 공익과 괴리가 있게 된다. 이런 정치시장의 구조문제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라고 지칭했다. 한때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시장실패(market failure)’란 용어로 포장되면서, 정부 개입 철학이 힘을 얻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다. 민감한 경제정책마저 정치인들이 입법에 나서면서 정치논리만 팽배한 착취적 입법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안 대비 의회 입법안 비율이 15대엔 1.4배였으나, 18대엔 7.2배가 됐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우리 현실은 분명 ‘정치실패’다.

정치시장 구조의 문제는 제도개혁으로 풀어야 한다. 정치인의 정치 이득을 위한 착취적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대중영합적인 정책은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나, 절대 정치인이 부담하지 않고, 국민의 몫이다. 대중영합적 정책은 많이 입법할수록 정치인의 비용부담 없이 정치편익이 크게 되므로 확대재생산되는 구조다. 결국 재원문제이므로,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세입 내 세출이란 ‘재정규율’을 법제화해야 한다. 한때 국회의 고유기능은 행정부의 독재를 견제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나, 이젠 국회가 국민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이 난무해 국회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입법이 필요한 세상이 됐다.

통합도 잘살기 위한 수단이다. 진정한 사회통합의 길은 착취적 정책이 아닌 생산적 정책으로 가야 한다. 착취적 정책이 개발되는 이유는 경제를 한 시점에 사회구성원 간 나눠 먹는 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생산적 정책의 이면에는 기업가정신, 탈규제, 비정상의 정상화, 법치주의, 재산권 보호 등의 철학을 바탕으로 경제를 동적과정으로 본다. 그러면 경제성장과 창조는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현진권 < 한국재정학회장·한경연사회통합센터 소장 jkhyun@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