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通常임금 vs 痛傷임금
얼마 전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더니 한 묶음 자료를 주며 “내가 지금껏 한평생 열심히 회사를 해왔는데, 이제 더는 안 하는 게 맞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날 가련하다는 듯 쳐다봤다. 도대체 내가 왜 가련하게 보였을까?

내용인 즉, 통상(通常)임금을 비롯한 최근의 반(反)기업적, 비(非)기업적 사회 현안들 때문이었다. 그의 회사는 현재 노조가 통상임금 문제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3년간의 통상임금 추가분을 소급해 한꺼번에 달라는 것일 터. 회사 입장에선 그것도 문제지만, 노조의 요구대로라면 앞으로도 매년 22% 정도의 급여 인상요인이 발생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더는 기업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 살기 위해서는 전(全) 라인을 자동화해 직원 수를 확 줄이든지 임금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기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업 속사정까진 난 모른다. 하지만 임금만의 문제라면 생각이 다르다. 내가 알기로 그 회사는 근로기준법과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 그리고 노사합의에 의하여 지금껏 최선을 다해온 훌륭한 기업. 한 번도 종업원 월급을 체불하거나 지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기업이 왜 ‘소송’을 당해야 하는가. 잘못한 것이 없으면 법의 심판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번 생각해보라. 법의 원칙이 명확하더라도 이것을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파업과 소송이 생긴다면 해당 기업의 타격은 어떠할 것이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또 얼마나 거대할지를.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는 우리들은 뼛속까지 기업가정신과 소명감으로 똘똘 뭉쳐 살아왔다. 물론 같은 부모, 같은 뱃속에서 나온 핏줄인데도 이런 저런 자식들이 있듯 여러 기업인 중엔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가 당연히 있다. 그런 것은 지금 통용되고 운용되는 관습과 규칙, 그리고 법률로도 능히 다스릴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제대로 운용하거나 집행하지 않은 이들에게 있는 것. 그렇다면 책임을 지더라도 바로 그들이 져야 할 사안 아닌가.

하지만 지금 국면은 오히려 기업이 책임을 지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누가 그 기업을 정상으로 돌리고 보상해줄 것인가. 또 평화롭고 보편적인 ‘통상(通常)’이 아니라,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어 다치게 하는 ‘통상(痛傷)’으로 가도록 바라고 있다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 처절한 심정으로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다.

강호갑 <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khg@ahpe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