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총장 161명, 발언기회는 네 번
“4년제 대학 202곳 중 161곳의 대학 총장이 모였는데 발언 기회를 딱 네 명에게만 주더군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19일 가진 대학 총장들과의 만찬 간담회에 참석한 한 사립대 총장은 아쉬움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 인사말을 통해 “대학 발전 방안에 대한 고견을 들려달라”고 주문했다. 대학 경영자인 총장들의 얘기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총장들에게 주어진 발언 기회는 네 번, 시간은 모두 10분 안팎이었다. 그나마 서거석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전북대 총장)과 김준영 사립대총장협의회장(성균관대 총장·차기 대교협 회장)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학들이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등 덕담을 했다. 지방대를 대표한 김기섭 부산대 총장도 “지방대 육성 정책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학들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전한 사람은 사립대를 대표한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이었다고 다른 총장들은 전했다. 황 총장은 “4~5년 내리 등록금을 인하 또는 동결해 대학 재정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데 대학 구조개혁 정책으로 정원까지 감축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며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수준으로만 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황 총장의 말처럼 요즘 많은 사립대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교수·교직원 급여를 수년째 동결하고 정교수 강의를 시간 강사에게 맡기는 일도 벌어진다. 창조경제의 밑거름이 될 인재를 양성해야 할 때에 시설보수 걱정이나 하고 있다는 푸념도 들려온다.

이날 만찬은 정부의 반값 등록금 정책에 호응해 준 총장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간담회 내내 등록금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대입 전형이 사교육비 과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추가 부담을 총장들에게 얹어 줬다.

간담회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한 사립대 총장은 “밥만 먹었는데…”라고 대답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진심이 총장들에게 전해졌을까. 미리 정해진 총장 네 명의 발언을 통해 대통령이 대학의 고민과 어려움을 제대로 느꼈을지도 궁금하다.

강현우 지식사회부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