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플래닛의 사내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플래닛X’ 1차 데모데이가 열린 지난 11일 사내벤처 아이템을 내놓은 직원들이 임직원 앞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있다. SK플래닛 제공
SK플래닛의 사내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플래닛X’ 1차 데모데이가 열린 지난 11일 사내벤처 아이템을 내놓은 직원들이 임직원 앞에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있다. SK플래닛 제공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주먹밥을 파는 식당 ‘웃어밥’에서는 배달을 나설 때 초소형 카드리더기를 가져간다. 이 리더기를 스마트폰의 이어폰 단자에 연결하면 미리 깔아놓은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휴대용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POS) 기기처럼 쓸 수 있다. 최성호 웃어밥 사장은 “매달 내야 하는 수수료도 없고, 가지고 다니기도 편리해 잘 쓰고 있다”며 웃었다.

이 기기를 만든 곳은 SK플래닛의 사내벤처 ‘?!’ 팀이다. 이 회사의 사내벤처 프로그램 ‘플래닛X’를 통해 결성됐다. 고재호 SK플래닛 팀장은 “기존 POS 단말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면 전통시장이나 배달업계 사람들이 편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디어 제안 동기를 밝혔다.

사내벤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유연한 ‘벤처 DNA’를 조직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절실함에 정보기술(IT)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음에선 최초 분사 사례도

지난달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에서는 사내벤처가 분사한 첫 사례가 나왔다. 자동차 수리 비교 서비스 ‘카닥’이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파손 부위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카닥 앱에 올리면 입점 수리 업체들이 실시간으로 견적을 내준다.

카닥은 다음의 사내벤처 지원 프로그램 ‘넥스트 인큐베이션 스튜디오(NIS)’에서 탄생했다. 사내 공모전을 통해 2012년 11월 사내벤처 아이템으로 선정된 후 지난해 3월 정식 출시된 서비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내벤처를 만들 기회를 주는 ‘크리에이티브랩(C랩)’을 신설했다. 네이버는 공식적인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화하는 ‘캠프모바일’을 통해 벤처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달 분사한 모바일 쿠폰 앱 서비스 ‘열두시’처럼 아이디어 제안자와 회사의 조율을 통해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기도 한다.

IT 기업마다 벤처 문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으로 대변되는 신속하고 유연한 벤처문화를 이식해 기업의 활력과 창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사내벤처는 직급과 부서, 나이의 벽에 갇혀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조직원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는 창구도 된다. 고 팀장을 포함한 ?!팀의 핵심 멤버들은 입사 1년차에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팀의 평균 연령은 28세에 불과하다. 반면 이준노 카닥 대표는 39세다.

○장기적으로 보고 운영해야

기업의 ‘노화’를 방지할 수 있지만 대기업에 속해 있는 하부 조직이라는 한계도 있다. 모회사와 사내벤처 간의 대표적인 의견 충돌은 방향성이나 수익성에 대한 관점의 불일치다. 모회사가 기존 사업의 틀에 사내벤처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박태웅 전 KTH 부사장은 “모회사가 다소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며 “몇 개가 성공하고 나면 지분율과 졸업 기준 등 관행이 자연스레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윤정 다음 신사업부문 이사도 “모회사의 기존 서비스나 콘텐츠와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아이템도 있고 아닌 아이템도 있을 것”이라며 “어느 쪽이든 창의적이고 재능이 있다고 내부적인 의견 합치를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사내벤처도 벤처다. 성공하는 회사가 극히 드문 벤처 창업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모회사에서 마케팅과 홍보를 지원하더라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다. 리처드 드밀로 미국 조지아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게임업계를 살펴보면 투자한 곳의 15%에서 90%의 수익이 돌아온다”며 “실패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사내벤처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