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모피아…관료출신 은행장 '제로 시대'
관료 출신인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퇴진이 결정됐다. 이로써 특수은행과 시중·지방은행 등 17개 국내 은행(수협 제외)의 은행장을 모두 관료 출신이 아닌, 민간 출신이 맡는 ‘관료 출신 은행장 제로 시대’가 열리게 됐다. 여기에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까지 민간 출신이 맡아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나 ‘금피아(금융위원회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의 퇴조현상이 뚜렷해졌다. 그런가 하면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도 금융당국과 사전 ‘상의’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사후에 ‘통보’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수 은행장도 모두 민간 출신

하나금융은 차기 외환은행장에 김한조 외환캐피탈 사장을 내정했다. 외환은행 출신의 순수 은행원이다. 관료 출신으로 기업은행장을 지낸 윤용로 행장은 퇴진이 결정됐다. 이로써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외환·한국씨티·한국스탠다드차타드(SC) 등 8개 시중은행장 모두를 민간 출신이 맡게 됐다.

뿐만 아니다. 홍기택 산업은행장은 학계 출신이고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은행원 출신이다. 공석 중인 수출입은행장에도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관료 출신의 전유물이었던 특수은행장 자리도 모두 민간으로 채워지게 됐다. 대구· 부산· 광주· 제주· 전북· 경남 등 6개 지방은행장은 모두 민간 출신이 맡고 있다.

국내 17개 은행장 중에서 관료 출신이 한 명도 없게 된 것은 사실상 사상 처음이다. 이원태 수협은행장이 관료 출신이긴 하지만, 수협중앙회와 법적으로 분리돼 있지 않아 일반 은행과는 다르다. 은행은 아니지만 은행연합회에 가입돼 있는 기술보증기금의 김한철 이사장은 산업은행 수석부행장 출신이고, 신용보증기금 서근우 이사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관료 출신들이 은행장직에서 잇따라 밀려나고 있는 것은 민간 출신을 선호하는 박근혜 정부의 영향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작년 6월 이장호 당시 BS금융지주 회장의 강압적 퇴진 논란 이후 불거진 ‘관치금융 논란’도 한 계기가 됐다.

◆금융당국과 ‘조율’ 사라져

은행장 선임 과정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은행장 후보에 대해 금융당국과 비공식적으로 상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근엔 아니다. 사외이사들의 목소리가 강해진 영향 등으로 경과 보고를 하는 게 고작이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28일 경영발전보상위원회(경발위)를 열고 은행장 후보들에 대한 면접을 했다. 논의 끝에 사외이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일 오후 2시께 김한조 사장을 차기 외환은행장으로 결정했다. 하나금융은 이 사실을 금융당국 고위관계자에게 곧바로 보고한 뒤 공식 발표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관료 출신인 윤용로 행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금융당국은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상당수 간부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안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현상은 지난달에도 나타났다. 하춘수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지난달 17일 사퇴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DGB금융은 바로 다음날 회장후보추천위원회 회의를 열고 박인규 전 대구은행 부행장을 차기 회장 겸 대구은행장으로 내정했다. 금융당국은 이 사실을 당일 아침에야 통보받았다.

김일규/장창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