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승진 시즌에도 썰렁한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 식당가.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삼성 승진 시즌에도 썰렁한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 식당가.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평일 손님은 80% 이상이 삼성 임직원인데 지난달부터 씀씀이가 확연히 줄었어요. 3월 초는 직원 승진 시즌인데 회식도 별로 없고요.”

지난 4일 저녁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뒤편 한 일식집에서 만난 직원 이모씨(34)의 말이다. 그는 “요즘엔 저녁에도 11개 방 중 4~5개 정도만 찬다”며 “메뉴도 술과 함께하는 정식, 세트 대신 식사만 하는 탕이나 단품을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 식당의 이날 저녁 예약은 두 팀(2명, 4명)이 전부였다.

삼성 전 계열사가 올 들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에 돌입하면서 서초동 삼성타운 주변 상가에 불똥이 튀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상당수 삼성 계열사들이 일제히 법인카드 한도를 낮춘 결과다. 삼성타운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전기, 삼성중공업 등 삼성 임직원들만 2만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업무차 찾는 방문자도 많아 삼성의 법인카드 결제가 인근 음식점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강남역 3번 출구 쪽 골목에 있는 한 한우전문식당은 지난 1일부터 5명이던 아르바이트 학생을 2명으로 줄였다. 박모 사장은 “술을 많이 마시는 저녁 시간대에 매출의 70%가 나오는데 연말 송년회 시즌 이후 올 들어 계속 매출이 줄고 있다”며 “하루 400만원을 웃돌던 매출이 최근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저녁 장사가 전부인 술집이나 노래방은 타격이 더 크다. 영업난을 타개하기 위해 오후 9시 이전에 찾으면 할인해주는 행사를 하거나 밤 12시 이후엔 손님이 없어 문닫는 시간을 한두 시간 앞당기는 업소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이 비용 절감에 들어간 배경은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다. 작년 4분기부터 삼성전자를 제외한 계열사 대부분의 실적이 급격히 둔화되자 수익성을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협력사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한편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올 1월에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다. 삼성은 올 들어 계열사별로 홍보 및 마케팅비를 최소 10%에서 최대 40%까지 줄이고 판매관리비 부대비 등 사업예산도 축소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에 119 음주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한 요인이다. 삼성은 회식을 하더라도 1차에서 한 가지 종류의 술로 9시 이전에 끝내도록 하는 ‘119 회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고객이나 거래처 약속도 가능하면 점심으로 잡아 비용을 줄이고 저녁식사를 해도 1차로 끝내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며 “법인카드 한도를 줄인 것은 아니지만 때가 때인 만큼 눈치껏 최대한 아껴 쓰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팀별 회식이 줄고 매년 3월1일 발표되는 직원 승진 인사 후 승진턱을 내는 분위기도 사라졌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특정 업소에 대한 법인카드 결제를 차단하는 ‘클린카드제’를 도입했다. 유흥주점이나 노래방, 나이트클럽, 사우나, 당구장 등에서 결제가 안 되는 법인카드를 지급한 것이다.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우전문식당의 박 사장은 “다음달에 나온다는 갤럭시S5가 엄청나게 잘 팔려서 삼성 직원들이 법인카드를 펑펑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