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새로운 롤모델이 될 전문지식인과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美만화 베스트셀러' 비결은…전문대 현장형 실전교육
[ 김봉구 기자 ]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만화부문 월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맥시멈 라이드'는 조금 독특한 작품이다. 유명 공상과학(SF) 소설가 제임스 페터슨의 글과 한국 만화가 이나래 씨(27·사진)의 그림이 만났다.

만화강국 일본의 '원피스' '나루토' 등 유명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작품의 원동력은 전문대식 현장형 교육이라 할 만하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출신인 이 씨는 이 대학 학교기업인 기숙형 스튜디오 '청강창조센터(CCRC)'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4년제대에선 하기 힘든 전문대 특유의 실전 프로젝트로 3년을 꽉 채웠다. 현업 작가들 또는 업계와의 네트워킹을 가진 교수들이 외부 제작사에서 사업을 수주해 오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일하는 형태다. 이 씨는 "학교에선 이론 공부보다는 실제 현업을 많이 했다"며 "특히 교수님들부터 수업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위기라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이 씨는 학교 재학 중 참여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했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그의 그림체를 눈여겨 본 미국에서 러브콜이 왔고, 해외 연재로까지 이어져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최근 부천만화창작센터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청강문화산업대에 입학하면 CCRC에서 작업용 책상과 컴퓨터가 주어지고, 한 평짜리 개인 스튜디오도 제공된다"며 "원래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실무 위주 교육이 나와 잘 맞았고, 학교와 교수님이 충실히 관리해줘 지금의 내가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 언제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나.

"만화 그리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출판사에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했다. 그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곧바로 만화가로 데뷔할 계획이었다. 만화가가 되는 데 대학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현장 경험을 쌓아 바로 데뷔하는 방식도 있으니까.

"우선 공모전에 나가 상을 타는 방법이 있다. 기존 만화가 밑에서 도제식으로 공부해 데뷔하는 방법도 있다. 사실 반드시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 생각을 바꿔 전문대에 진학한 계기를 듣고 싶다.

"많이들 권했다. 곧바로 사회에 나가기보다 실무경험도 쌓을 겸 대학에 가는 게 나을 거라고. 청강문화산업대는 원래 알고 있었다. 중학생 때 학교가 주최한 만화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나한테 잘 맞는 대학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만화 관련 커리큘럼 위주로 집중돼 있었고, 기간도 길지 않았다. 나에겐 불필요한 교양수업을 이것저것 이수할 의무도 없었다."

- 4년제대에도 만화 관련 학과가 있는데?

"입시부터 달랐다. 4년제대는 입시부터 상황표현이라든지, 만화를 연구하거나 실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상업만화였는데 거리가 있었다. 사실 소위 '입시 그림체'에서 못 벗어나 힘들어 하는 만화가들도 종종 있다. 청강문화산업대는 그런 게 없었다. 한 페이지에 컷 제한을 두지 않고 그릴 수 있도록 해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 주변의 반대가 있었을 텐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4년제대 진학을 원했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데뷔 시기가 늦어질 뿐 아니라 커리큘럼도 군더더기가 많았다. 굳이 4년제대를 가야 한다면 차라리 만화가 강한 일본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사실 집안 형편이 해외 유학을 갈 만큼 넉넉하진 않았다. 그래서 고집을 부려 청강문화산업대에 진학했다. 내겐 4년제대인지, 전문대인지보다 어떤 공부를 할지가 더 중요했다."

- 학교에 가보니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나?

"입학하고 나서 굉장히 프로젝트가 많이 생겼다. 다음 미디어 웹툰 코너엔 아예 청강문화산업대 학생들 작품 모아놓은 코너도 오픈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작품을 어떻게든 현장처럼 끌어내 독자들에게 보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준비했다. 덕분에 학교에 가서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실무 위주 교육이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 교수님들이 자기 수업을 많이 양보하는 편이었다. 사실 그러긴 쉽지 않다. 학생들이 작가가 되기 위해 뭘 하고 싶다거나 이런 게 필요하다, 부탁하면 이해해주고 많이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을 공모전에 내고 싶다거나 데뷔하고 싶다고 하면 계획서를 받아서 과제를 그걸로 대체해주는 식이다. 실제 그렇게 대체 과제 작품으로 데뷔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 교수들이 무척 유연하게 대처한 것 같다.

"가능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줬다. 학생들 작품을 상업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해 직접 출판하는 기획도 하고. 나도 1학년 때부터 데뷔할 수 있었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美만화 베스트셀러' 비결은…전문대 현장형 실전교육
- 해외 연재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재학 중에 참여한 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기존 작가들과 함께 학생들 작품도 실리는 무크지가 나왔다. '거북이북스'란 전문출판사에서 출간된 '에로틱'이란 제목의 무크지였는데, 학교 강사로 강의하던 거북이북스 대표 분과 함께 기획한 것으로 안다. 거기에 현직 스토리작가와 함께 작업해 실린 단편을 보고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 미국 현지에서 인기를 얻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선 원작 자체가 인기 많은 편이다. (웃음) 사실 국내에선 내 그림체가 '이도 저도 아니다'란 평이 많았다. 여성적인 순정만화체도, 남성적 소년만화체도 아니란 거였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에선 '양쪽에 모두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중성적 이미지를 강점으로 인정해줬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데 내게는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 CCRC는 어땠나. 여기 창작센터와 다른가.

"CCRC는 내가 1학년 때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 졸업생들을 위해 작업용 컴퓨터와 책상을 마련해줬다. 지금 이 스튜디오처럼, 조그만 한 평짜리 스튜디오를 빈털터리 졸업생에게 제공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신입생들에게도 제공된다고 들었다."

- 졸업 후 생각해 보니 어떤가. 학교가 얼마나 도움이 된 것 같나.

"솔직히 말하면 대학에 가지 않았어도 만화가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내 꿈을 챙기는 든든한 매니저가 생긴 느낌이 들더라. 사실 어느 대학에 가든 전공 공부는 '수박 겉핥기'가 되기 쉬운데, 나 같은 경우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 길을 닦아주고 만들어주고 연결도 시켜줬다. 오롯이 나 혼자서 해야 할 일들을 업계 전문가들이 나서 코치 해주고 매니저 역할까지 해준 셈이다."

- 만화가 특수한 분야라 스펙이 필요없는 것 아닐까?

"사실 난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내가 '대체불가능' 하니까, 통역을 쓰면서까지 나와 작업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앞으로 유학을 가 영어도 배울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내 필요에 의해서다. 보통 대학생들처럼 마냥 불안해서 배우러 가는 것과는 다르다."

-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이 있다면.

"전문대는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짧다.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또래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취업 준비도 열심히 했다. 좀 더 바쁘게 지낼 뿐이지. 같은 학교 출신 남편(이윤균 작가)과 만나 결혼도 했고, 지금 작업실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 중에도 학교 후배들이 많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美만화 베스트셀러' 비결은…전문대 현장형 실전교육
◆ 나에게 전문대란…

부모님과 선생님의 뜻대로 원치 않던 대학에 갔더라면, 실전형 교육을 하는 전문대를 택하지 않았더라면, 주변의 말에 흔들려 내 선택을 믿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전문대가 내 꿈을 앞당겨줬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자부한다. 누군가 학교 진학으로 고민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간판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라고 할 것이다.

부천=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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