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구체적 내용 '비공개'…판례 못 남겨

삼성전자 고화질 텔레비전 기술의 초석을 다진 전직 연구원이 합당한 보상을 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4년 동안 벌인 소송이 최근 조정으로 봉합됐다.

지난 2012년 1심은 6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금을 인정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조정이 이뤄지면서 비슷한 사건에 참고할 수 있는 판례를 남기지 못했다.

서울고법 민사5부(이태종 부장판사)는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을 지낸 정모씨가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지난달 6일 강제조정을 결정했고 사건이 그대로 마무리됐다고 11일 밝혔다.

강제조정은 임의조정이 성립하지 않은 사건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원·피고에게 공평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아무도 이의를 신청하지 않을 경우 재판상 화해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제도다.

항소심에서 수차례 임의조정에 실패한 삼성전자와 정씨는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받아들였다.

양측은 다만 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법원도 비공개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이같은 원칙은 조정 결정문에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씨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디지털 고화질 텔레비전 연구·개발을 주도해 국내외 특허 38건을 회사 명의로 출원했다.

대학 교수로 전직한 정씨는 회사가 자신의 기여에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며 지난 2010년 소송을 냈다.

1심은 삼성전자가 정씨의 특허 발명 덕분에 625억여원을 벌었다고 판단했다.

그 중 정씨에 대한 보상률을 10%로 정하고, 그가 이미 받은 2억여원을 빼 60억3천여만원의 보상을 인정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정씨 발명에 대한 회사 기여도를 법원이 과소평가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기업이 직원의 직무발명에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판결로 평가되기도 했다.

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1심은 IT 업계가 깜짝 놀랐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판결이었다"며 "강제조정으로 1심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돼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휘말린 직무발명 관련 소송이 확정 판결 없이 봉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전자 직원 최모씨는 자신이 발명한 '천지인' 자판을 무단 사용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2002년 패소했다.

항소한 최씨는 이듬해 회사와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삼성전자 측은 합의 과정에서 최씨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