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농업 보호책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농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월스트리트저널은 온갖 종류의 보조금이 일본 농업을 죽였다며 자성하는 일본 농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일본 농민의 3분의 2가 60세를 넘을 정도로 세대교체에 실패한 것도 결국 보조금 탓이라는 것이다. 농협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놨지만 농업 혁신에 방해만 됐을 뿐이라는 불만도 쏟아지는 모양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런 목소리가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대한 농민단체의 반발 속에 나왔다는 점이다. 일본 농민단체는 쌀 등 농산물 개방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그러자 처음에는 강하게 나가던 아베 내각이 오히려 새로운 보조금을 도입하겠다며 무마책을 들고 나오는 분위기다. 일본의 의식 있는 농민은 이런 정부에 더는 농업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런 반성이라도 있다지만 정작 우리는 어떤가. 정부 보조금에 찌들기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농가소득 중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53%다. 일본(52%)을 웃도는 것은 물론 EU(18%) 중국(17%) 미국(7.7%)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그런데도 보조금을 더 내놓으라는 목소리들뿐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만 나오면 농업이 망한다며 농민들은 극한 투쟁에 나서고, 그때마다 정치권은 파격적 보조금을 내놓는다. 한·칠레 FTA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의 한·미, 한·EU FTA가 다 그랬다.

그러나 보조금의 허구성은 다음달로 발효 10년을 맞는다는 한·칠레 FTA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농민단체는 연간 피해액이 2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다 망한다던 포도농가는 오히려 소득이 두 배로 늘었다. 결국 폐업 지원금이다 뭐다 해서 헛돈만 썼다.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해야 솔직하다. 그런데도 올해만 수조원의 보조금을 또 퍼붓겠다는 것이다. 농업 보조금을 중단하라는 농민 자신의 목소리는 언제쯤 들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