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국내 최대 공인 판매점인 컨시어지가 내달 13일까지 38개 매장을 차례로 닫는다고 한다.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을 맘껏 체험하고 살 수 있어 ‘애플의 성지(聖地)’로 불리던 곳이다. 프리스비, 에이샵 등 다른 공인 판매점들도 매장을 줄이거나 폐쇄하고 있다. 이유는 판매 부진이다. 아이폰 시장점유율은 2011년 14%에서 현재 4~5%에 불과하다. 판매점으로선 영업마진이 적고, 보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제품은 안 팔리니 적자를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판매점들이 문을 닫는다고 애플이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컨시어지가 사업을 접게 된 과정을 보면 외신들이 한국을 ‘글로벌 기업의 무덤’이라고 묘사했던 장면들이 새삼 떠오른다. 세계 유통 1, 2위인 월마트와 까르푸는 국내에 들어온 뒤 줄곧 4, 5등에 머물다 짐을 쌌다. 맥도날드도, KFC도, P&G도 한국에선 1등이 아니다. 식품 1위인 네슬레는 동서식품에, 하인즈는 오뚜기에 밀려 힘을 못 쓴다.

글로벌 기업들이 유독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한 데 있다. 국내에선 고품질에 합리적인 가격, 접근이 쉬운 유통망, 친절·신속한 AS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애플의 악명 높은 교환·환불 정책이 통할 리 없다. 세계 1위 명성만 믿고 본사의 경직적인 방침을 고집해서는 배겨날 수 없다. 한국에서 통하면 아시아에서 통한다는 것도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선 이제 상식이다.

세계 1등 기업과 맞짱 뜨는 토종기업들의 반격도 여간 매섭지 않다. 그렇게 실력을 키워 중국 동남아에서 1위에 오른 사례가 많다. 하지만 범용 제품, 생필품에 국한된 얘기다. 최고급 자동차, 명품, 화장품, 의류 등에서는 해외 기업들이 한국시장을 주름잡는다. 페이스북처럼 국내 기업을 밀어낸 사례도 있다. 결국 빠른 추격자로 성공했지만 가치와 혁신의 선도자는 결코 아닌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무덤인 동시에 최고급 시장에선 봉이 돼 있는 한국의 두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