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낭만적 결혼이 사라진 사회
오늘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란다.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국적도 불명하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명분도 불투명한 날이건만, 올해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선 화이트데이를 자축하는 분위기가 넘실댈 게다.

유럽에서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유입된 밸런타인데이가 한 달 후 화이트데이로 진화(?)한 건 일본의 작품이란 설이 유력한 가운데, 사랑의 표현이 현란한 캔디 속에 포장되고, 다양한 이벤트와 더불어 희화화되는 풍속도와는 별개로, 일명 ‘3포(三抛) 세대(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 젊은이들 사이에선 사랑과 결혼의 함수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의 배필로 맞이한다는 낭만적 결혼이 근대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징표의 하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근대화 물결을 타고 서구식 낭만적 결혼의 환상이 적극 유입돼 결혼 풍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지 그리 오래지 않았건만, 최근의 결혼 관행 속에서는 사랑의 입지가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음이 관찰되곤 한다.

무엇보다 요즘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젊은이들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는 결혼은 하지 않겠노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덕분에 자신들은 양가 부모 상견례 자리 후에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신혼집 마련이 불가능한데다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화려한 결혼식 또한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기에, 부모 허락을 구하는 의례를 먼저 치른 다음에야 결혼 당사자들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벤트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고도성장기 사회적 상승 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던 시기엔 단칸 셋방 얻을 여유만 있으면 결혼에 성큼 뛰어들었고, 부모 반대를 무릅쓴 채 집안 간 격차를 뛰어넘어 운명적 상대와 낭만적 결혼에 이르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저속성장기로 접어들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종언을 고한 이후엔, 결혼의 실질적 권한이 다시 부모에게로 되돌려지고 있음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20대 결혼관 연구를 위한 인터뷰 자리에서 직접 전해들었다. “부모 잘 만난 친구들은 부모 덕에 제때 결혼할 수 있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나 같은 이들은 사귀는 상대가 있어도 결혼은 언제 할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는 것이 29세 남성(중소기업 대리)의 솔직한 푸념이요, “결혼해서 부모만큼 잘살 가능성이 없으면 그냥 부모 밑에서 월급을 용돈으로 쓰면서 풍족하게 살고 결혼 대신 연애만 하겠다”는 게 28세 여성(중소기업 연구직)의 솔직한 심경이란 이야기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도 데이트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여 관계마저 포기한 ‘4포 세대’란 신조어도 등장했고, 남녀가 만나 지루하게 ‘밀당(밀고 당기기)’하느니 차라리 원나잇 스탠드가 편하다는 충격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것이 요즘 세태다.

결혼과 출산을 생애주기상의 필수품으로 인식했던 부모 세대의 입장에선 이를 사치품으로 받아들이는 자녀 세대의 태도가 쉽게 이해되는 바는 아니지만, 저속성장과 고용 불안정이 결혼관과 출산 인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와중에 관계는 점차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전락하고, 관계의 수명주기 또한 단축돼 100일 정도 만나면 ‘오래된 연인’(?)이 되면서, 관계의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위무받고자 화이트데이 유(類)의 이벤트가 성행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시절을 미화함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결혼과 출산의 의미가 지나치게 경제논리에 따라 재단되고 좌지우지됨은 안타깝기만 하다. 신분제도가 발달된 사회일수록 조혼(早婚)을 부추겼던 이유는 신분질서를 교란하는 요소 중 하나가 사랑 때문이었다는 인류학자들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낭만적 결혼이 사라진 자리에 계층적 동질혼이 성행하면서 불평등이 고스란히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는 현실에 깊은 우려가 앞선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