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 돈줄 옥죄는 자본시장 규제
중견 제지업체 P사가 150억원 규모의 공모 전환사채(CB)를 발행한 건 지난달 초였다. 연 7% 이자율(만기 기준)에 3년 동안 CB 발행 당시 주가로 주식 전환 기회를 주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전체 물량의 6.2%만 소화됐다. 나머지 물량은 CB 발행을 주관한 증권사들이 떠안았다. P사는 그 대가로 증권사에 12억여원을 내줘야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작년에는 연 7%짜리 신주인수권부사채(BW)로 자금을 마련했는데 분리형 BW 발행이 금지되면서 올해는 CB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분리형 BW보다 인기가 떨어지는 CB가 안 팔려 결국 증권사에 물어준 돈까지 합하면 연 10%짜리 비싼 자금을 쓰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원수 같은 규제’는 이처럼 자본시장에도 널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8월 시행된 분리형 BW 발행 금지다.

분리형 BW란 신주인수권과 채권을 분리해 매매할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투자자가 채권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뒤 주가가 오르면 신주인수권을 행사, 차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해 인기가 높다.

낮은 이자율로 기업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꼽힌다. 그러나 정부는 채권과 신주인수권을 떼어내지 못해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체형 BW의 발행만 허용하고 분리형은 금지시켰다.

中企 자금난 가중시켜

분리형 BW가 ‘퇴출’된 것은 일부 대주주들이 분리형 BW를 사모 형태로 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 뒤 신주인수권을 싼값에 취득, 손쉽게 돈을 번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기존 주주 및 일반 투자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줘 대주주가 악용할 가능성이 없는 공모 분리형 BW까지 깡그리 금지시켰다.

분리형 BW의 퇴출은 중견·중소기업들의 자금난으로 직결되고 있다. 연말까지 기업들이 상환해야 할 분리형 BW 규모는 대략 2조4000억원에 달한다. BW 발행이 불가능해진 만큼 비싼 이자를 주고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과잉 규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급여력(RBC)비율 관련 보험사의 펀드 출자 규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증자 시 우리사주 20% 의무 배정 규제 △상장 주관사의 공모주식 3% 의무 인수 제도 등도 악성 규제로 꼽힌다. 금융당국의 ‘운영상 규제’도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오상헌/이유정/허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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