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1200억弗 투자 선언한 '만년 2위' 셰브론, 1위 엑슨모빌에 도전장
글로벌 정유업계 만년 2위였던 셰브론이 1위 엑슨모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셰브론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엑슨모빌보다 더 많은 규모의 순투자액을 책정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엑슨모빌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셰브론이 고성장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정유업계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엑슨모빌은 현재 셰브론보다 석유 및 가스 생산량에서 54%, 시가총액에서 85% 앞선다.

셰브론은 올해부터 3년간 연 400억달러(약 43조1600억원)씩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 순투자액(420억달러)보다 소폭 줄어든 규모다. 반면 엑슨모빌은 투자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지난해 425억달러에서 올해 400억달러로 줄인 데 이어 2015년부터 3년간 매년 370억달러 이하로 투자액을 낮출 계획이다. 조지 커클랜드 셰브론 부사장은 “엑슨은 2017년까지 생산량 증가율이 3%에 그치는 반면 셰브론은 약 19%에 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FT는 두 업체의 투자전략 차이가 기존 자원탐사 수익률에서 희비가 엇갈린 탓이라고 분석했다. 셰브론은 호주에서 두 건의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사업을 진행했고, 이 중 한 건을 완료했다. 멕시코 걸프만에서도 두 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멕시코만은 정유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지역이다. 업계는 셰브론이 앞으로 몇 년간 다른 정유업체보다 배럴당 높은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엑슨모빌은 주요 수익처였던 아부다비의 석유채굴권 시한이 지난 1월 만료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올해 파푸아뉴기니 LNG사업과 러시아 동부 해안의 사할린 1유전 개발사업을 앞두고 있지만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간에 수익을 내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엑슨모빌의 투자사업에 악재로 꼽힌다.

경영진의 태도도 판이하다. 셰브론의 경영진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면서 석유 가격이 상승해 배럴당 100달러 이상 유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엑슨 경영진은 유가 하락을 예상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는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기회의 크기가 아니라 질”이라며 “우리 능력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아직 엑슨의 전략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미국 셰일 붐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엑슨 주가는 6% 상승했다. 이 기간 셰브론 주가는 5% 하락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