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시계배터리 매일 100만개 생산…스와치, 전기차배터리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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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그룹 이끄는 닉 하이에크 CEO
“사전 질문지요? 전 그런 거 싫어합니다. 그냥 만나서 편하게 얘기합시다.” 세계 최대 시계회사 스와치그룹을 이끄는 닉 하이에크 최고경영자(CEO). 그는 인터뷰가 성사된 직후 “질문지를 보내주겠다”는 기자에게 이런 ‘쿨’한 답변을 보내왔다.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마주한 그는 실제로도 격의 없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다. 캐주얼한 재킷과 청바지 차림으로, 한시간 반에 걸쳐 거침없는 답변을 쏟아냈다. 그는 외부 손님을 만날 때 늘 그렇듯 이날도 양손목에 시계 하나씩을 차고 나왔다. 시계를 소재로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란다. 스와치그룹은 18개 시계·보석 브랜드와 함께 무브먼트(동력장치)를 비롯한 각종 부품을 제조해 다른 회사에 공급하기도 한다.
▷수많은 브랜드를 챙기려면 늘 바쁘지 않나.
“나보다는 각 브랜드 담당자들이 훨씬 바쁘다. 스와치그룹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아니라 브랜드별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중앙연구소가 없고, 브랜드와 부품별로 50개 넘는 연구개발(R&D) 조직이 신속하게 의사소통하면서 가동한다.”
▷시계시장이 고속 성장을 거듭해 왔는데, 어디까지 클 수 있나.
“고가 명품은 고소득층 수요가 꾸준한 만큼 앞으로도 잘 굴러갈 것이다. 내가 요즘 주목하는 건 중산층들이 많이 찾는 ‘중간급’ 브랜드다. 최근 중국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브랜드는 론진, 미도, 티쏘, 스와치 등이다. 고품질의 스위스메이드(스위스산)이면서 가격은 합리적인 브랜드들이 앞으로 회사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업계 1위를 지켜온 비결은.
“우리 전략은 아주 간단하다. 저가부터 초고가까지 모든 부문에 진출한 것이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생산해 스위스메이드에 걸맞게 철저히 품질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죽 시곗줄 정도 빼고 시계에 들어가는 건 거의 다 만든다. 재정 운용은 매우 보수적으로 한다. 외형 성장폭이 다소 적더라도 빚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자기자본비율은 83%로 스위스 기업 중 1위다.”
▷완벽한 수직계열화가 스와치그룹의 최대 강점이라는 얘기인데.
“많은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겠다고 R&D와 생산 기지를 분리한다. 예컨대 R&D는 한국에서, 생산은 중국에 하청을 주는 식이다. 의사결정 속도나 인력 운용 면에서 결국은 비효율이 생긴다. (기자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난 애플도 이해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현금을 쌓아놓고서 왜 생산을 중국 폭스콘에 맡겨 핵심 기술을 노출하고, 경쟁사인 삼성에서도 부품을 가져다 쓰나. 내가 애플이라면 미국에 투자해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자국민을 고용할 것이다.”
▷스마트폰과 시계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보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스와치는 배터리부터 칩까지 100% 스위스메이드면서 가격은 70스위스프랑(약 8만원)밖에 하지 않는다. 생산을 직접 컨트롤하면 경영도 수월해지고 제품을 훨씬 책임감 있게 만들 수 있다.”
▷리치몬트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처럼 고가 명품에 특화하지 않는 이유는.
“애널리스트 중에도 ‘스와치나 티쏘 같은 건 접고 럭셔리에 집중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땅 위에 빌딩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초고가 럭셔리는 빌딩으로 치면 펜트하우스다. 그런데 아래는 뻥 뚫리고 꼭대기에 펜트하우스만 덩그러니 공중부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1층부터 멋있게 지어 많은 사람이 오가게 만들고, 그 위로 층층이 건물을 올려야 펜트하우스도 존재할 수 있다.”
▷스마트폰 기업들이 내놓은 스마트워치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계라는 건 단순히 부품의 조합이 아니라 가치를 담은 물건이다. 스마트워치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진 않지만,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각종 전자장치가 다닥다닥 붙은 시계를 원할지 모르겠다. 티쏘도 2000년 ‘파파라치’라는 스마트워치를 개발해 미국에 출시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뉴스를 보여주는 등 오늘날 스마트워치와 기능이 거의 같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았다.”
▷삼성, 애플, 소니 등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스마트워치에 관심 있는 회사들은 다 우리한테 와서 줄을 선다. 소니, HTC, LG전자, 구글 등을 이미 만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나오는 스마트워치는 우리가 2000년에 내놨던 파파라치와 비교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시계 외에 다른 사업 구상은.
“핵심 비즈니스는 시계와 보석이지만,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다른 산업에도 이식할 준비가 돼 있다. 사람들은 흔히 스와치그룹에서 시계만을 떠올리지만 우리는 마이크로공학에 있어서도 정상급이다. 시계 사업을 하려면 마이크로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배터리와 각종 정밀부품에도 전문가여야 한다. 삼성 휴대폰에 우리 쿼츠(석영)가 들어가고, 나이키의 피트니스 밴드에 우리 칩이 들어가고, 배터리 공장에선 하루 100만개의 배터리를 만든다. 우리는 시계에서 쌓은 전력효율 노하우를 활용해 전기차 배터리도 만들 준비가 돼 있다.”
▷회사 경영에서 좌우명으로 삼는 게 있다면.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게 있다. ‘여섯 살 때의 호기심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꼬마들이 창의적인 건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 호기심도 질문도 줄어드는 법이다. CEO가 직원을 가르치는 선생님 놀이를 해선 안 된다. ‘잘 모른다’고 인정하고,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 말자는 게 내 철학이다.”
▷한국에선 명품 브랜드의 가격 폭리가 심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명품회사의 의무는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돌려주는 것이다. 장인정신 없이 그저 다이아몬드나 금만 잔뜩 박아 비싸게 판다면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다. 우리가 늘 ‘스위스메이드’와 ‘이노베이션’이란 가치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스와치그룹은 스위스 시계가 몇몇 부유층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소비자들이 열망하는 제품으로 위상을 굳히는데 기여하고 싶다.”
바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수많은 브랜드를 챙기려면 늘 바쁘지 않나.
“나보다는 각 브랜드 담당자들이 훨씬 바쁘다. 스와치그룹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아니라 브랜드별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중앙연구소가 없고, 브랜드와 부품별로 50개 넘는 연구개발(R&D) 조직이 신속하게 의사소통하면서 가동한다.”
▷시계시장이 고속 성장을 거듭해 왔는데, 어디까지 클 수 있나.
“고가 명품은 고소득층 수요가 꾸준한 만큼 앞으로도 잘 굴러갈 것이다. 내가 요즘 주목하는 건 중산층들이 많이 찾는 ‘중간급’ 브랜드다. 최근 중국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브랜드는 론진, 미도, 티쏘, 스와치 등이다. 고품질의 스위스메이드(스위스산)이면서 가격은 합리적인 브랜드들이 앞으로 회사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업계 1위를 지켜온 비결은.
“우리 전략은 아주 간단하다. 저가부터 초고가까지 모든 부문에 진출한 것이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생산해 스위스메이드에 걸맞게 철저히 품질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죽 시곗줄 정도 빼고 시계에 들어가는 건 거의 다 만든다. 재정 운용은 매우 보수적으로 한다. 외형 성장폭이 다소 적더라도 빚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자기자본비율은 83%로 스위스 기업 중 1위다.”
▷완벽한 수직계열화가 스와치그룹의 최대 강점이라는 얘기인데.
“많은 기업들이 비용을 아끼겠다고 R&D와 생산 기지를 분리한다. 예컨대 R&D는 한국에서, 생산은 중국에 하청을 주는 식이다. 의사결정 속도나 인력 운용 면에서 결국은 비효율이 생긴다. (기자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난 애플도 이해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현금을 쌓아놓고서 왜 생산을 중국 폭스콘에 맡겨 핵심 기술을 노출하고, 경쟁사인 삼성에서도 부품을 가져다 쓰나. 내가 애플이라면 미국에 투자해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자국민을 고용할 것이다.”
▷스마트폰과 시계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보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스와치는 배터리부터 칩까지 100% 스위스메이드면서 가격은 70스위스프랑(약 8만원)밖에 하지 않는다. 생산을 직접 컨트롤하면 경영도 수월해지고 제품을 훨씬 책임감 있게 만들 수 있다.”
▷리치몬트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처럼 고가 명품에 특화하지 않는 이유는.
“애널리스트 중에도 ‘스와치나 티쏘 같은 건 접고 럭셔리에 집중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땅 위에 빌딩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초고가 럭셔리는 빌딩으로 치면 펜트하우스다. 그런데 아래는 뻥 뚫리고 꼭대기에 펜트하우스만 덩그러니 공중부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1층부터 멋있게 지어 많은 사람이 오가게 만들고, 그 위로 층층이 건물을 올려야 펜트하우스도 존재할 수 있다.”
▷스마트폰 기업들이 내놓은 스마트워치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계라는 건 단순히 부품의 조합이 아니라 가치를 담은 물건이다. 스마트워치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진 않지만,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각종 전자장치가 다닥다닥 붙은 시계를 원할지 모르겠다. 티쏘도 2000년 ‘파파라치’라는 스마트워치를 개발해 미국에 출시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뉴스를 보여주는 등 오늘날 스마트워치와 기능이 거의 같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았다.”
▷삼성, 애플, 소니 등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스마트워치에 관심 있는 회사들은 다 우리한테 와서 줄을 선다. 소니, HTC, LG전자, 구글 등을 이미 만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나오는 스마트워치는 우리가 2000년에 내놨던 파파라치와 비교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시계 외에 다른 사업 구상은.
“핵심 비즈니스는 시계와 보석이지만,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다른 산업에도 이식할 준비가 돼 있다. 사람들은 흔히 스와치그룹에서 시계만을 떠올리지만 우리는 마이크로공학에 있어서도 정상급이다. 시계 사업을 하려면 마이크로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배터리와 각종 정밀부품에도 전문가여야 한다. 삼성 휴대폰에 우리 쿼츠(석영)가 들어가고, 나이키의 피트니스 밴드에 우리 칩이 들어가고, 배터리 공장에선 하루 100만개의 배터리를 만든다. 우리는 시계에서 쌓은 전력효율 노하우를 활용해 전기차 배터리도 만들 준비가 돼 있다.”
▷회사 경영에서 좌우명으로 삼는 게 있다면.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던 게 있다. ‘여섯 살 때의 호기심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꼬마들이 창의적인 건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 호기심도 질문도 줄어드는 법이다. CEO가 직원을 가르치는 선생님 놀이를 해선 안 된다. ‘잘 모른다’고 인정하고,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 말자는 게 내 철학이다.”
▷한국에선 명품 브랜드의 가격 폭리가 심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명품회사의 의무는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돌려주는 것이다. 장인정신 없이 그저 다이아몬드나 금만 잔뜩 박아 비싸게 판다면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다. 우리가 늘 ‘스위스메이드’와 ‘이노베이션’이란 가치를 중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스와치그룹은 스위스 시계가 몇몇 부유층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소비자들이 열망하는 제품으로 위상을 굳히는데 기여하고 싶다.”
바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