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외국계 기업들이 몰려 ‘완전 임대시장’을 형성했던 서울 강남 오피스 공실률이 최근 2년새 8배로 늘었다. 사진은 강남 테헤란로 전경. 한경DB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들이 몰려 ‘완전 임대시장’을 형성했던 서울 강남 오피스 공실률이 최근 2년새 8배로 늘었다. 사진은 강남 테헤란로 전경. 한경DB
“빌딩조사전문업체들이 발표하는 서울 강남 지역 사무실(오피스) 공실률은 5~8% 내외인데 이는 대로변 건물 중심입니다. 이면도로 중소형 빌딩 중엔 20%가량 빈 곳이 상당합니다.”(이현아 글로벌PMC 임대마케팅팀장)

“올 연말 한국전력과 6개 발전 자회사가 광주전남혁신도시로 이전하면 삼성동 일대 빌딩시장에 ‘한전 쇼크’가 올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옵니다.”(이충묵 트웰브 마케팅팀장)

서울 도심과 여의도, 판교 등에 새 오피스 빌딩이 대거 신축되고 강남지역에 많이 포진했던 공기업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강남 오피스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동안 ‘완전 임대시장’(공실률 2% 이내)으로 분류됐던 강남 오피스 공실률은 올 1분기 말 현재 조사기관에 따라 최고 8% 선으로, 최근 2년 새 8배나 높아졌다.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렸던 강남의 빌딩 주인들은 임차인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강남 공실률

MS·넥슨·엔씨소프트 줄줄이 떠나…강남 빈 사무실 8배 늘었다
8일 미국계 자산관리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울 강남의 A급 오피스 빌딩(연면적 3만㎡ 이상) 공실률은 8.0%로 조사됐다. 작년 4분기 7.1%에서 한 분기 만에 0.9%포인트 급등했다. 대형 빌딩 신축이 이어졌던 서울 강북 도심(9.6%)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공실률 상승 폭은 강남 지역이 압도적이다. 2012년 초 공실률 1.1%와 비교하면 충격적이라는 게 빌딩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같은 기간 강북 도심 오피스 공실률은 18.1%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윤원섭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서울 강북 도심과 판교 등의 새 건물이 ‘렌트프리’(연 2~3개월 내외 무료 임대)와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 강남의 주요 입주기업이 잇따라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도심 임대료는 강남(3.3㎡당 8만~10만원대)보다 15~20% 비싸다. 그러나 건물주가 입주업체에 렌트프리 1개월을 주면 실질 임대료는 8%씩 저렴해진다. 연간 2~3개월만 임대료를 안 받아도 도심과 강남의 임대료 격차는 사라지는 셈이다.

◆렌트프리 확산에 ‘한전 쇼크’까지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작년 말 서울 대치동 포스코빌딩에서 광화문 K트윈타워로 본사를 옮겼다. 직원들이 사용하던 포스코빌딩 5개 층 중 3개 층은 여전히 비어 있다.

작년 말 판교로 이사한 엔씨소프트가 있던 서울 삼성동 빌딩도 현재 60%가량 공실로 남아 있다. 지난 12월 모토로라가 국내에서 철수하며 비운 양재동 하이브랜드빌딩도 공실을 떠안고 있다. 앞서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IT업체들은 판교 테크노밸리에 신사옥을 마련해 강남을 떠났다. 외국계 기업, 증권·보험 등 금융사, 컨설팅 업체 등은 경기침체 영향으로 지난해 사무실 공간을 줄이거나 지점을 통폐합했다.

빌딩 중개법인인 원빌딩부동산중개의 정희만 팀장은 “‘앵커 테넌트’(주요 세입자)를 잡으려고 1년에 ‘렌트프리’ 1개월을 암암리에 줬는데 이젠 강남에서도 1.5~2개월 ‘렌트프리’를 주는 곳이 적지 않다”며 “5년 계약하면 최대 10개월치 임대료는 안 받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이면도로 중소빌딩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현아 팀장은 “유통업체 유치에 주로 활용하던 ‘전대차’(시세보다 저렴하게 통임대한 세입자가 재임대를 놓는 것)가 강남권 오피스 시장에서도 퍼지고 있다”며 “노후한 중소형 빌딩 주인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할 정도”라고 전했다.

여기에다 오는 11월 한국전력이 나주로 이전하면 삼성역 일대에 대규모 공실 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남동·서부·중부 등 6개 발전 자회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도 연쇄적으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한수원이 입주해 있는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도 전체 15개 층 중 7개 층이 빠져나간다.

중소형빌딩 자산관리업체 트웰브의 이충묵 팀장은 “한전 자회사에 각종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들도 대부분 삼성동 일대에 영업사무실을 내고 있는데 함께 이사 갈 수밖에 없다”며 “이 동네 건물주들이 많게는 절반 가까이 건물이 비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혜정/김동현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