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안 오르테가의 ‘지구의 중심으로의 여행’
다미안 오르테가의 ‘지구의 중심으로의 여행’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은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갖가지 돌 조각들이 구형을 이루며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중심으로의 여행: 관통 가능성’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작품은 고고학적 유물이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암시하듯 관객에게 다양한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멕시코의 떠오르는 설치작가 다미안 오르테가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 ‘풍경 읽기(Reading Landscapes)’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하찮은 물질 속에 잠재해 있는 예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의미를 마치 해부도처럼 보여준다.

그는 정규 미술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연극배우인 아버지로부터 자유롭고 열린 교육을 받았다. 고교를 중퇴하고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남미 출신의 현대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츠코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업실에서 기량을 닦으며 각종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번에 출품된 10여점의 설치 및 조각 작품은 유년기에 흥미를 가졌던 지질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지구의 중심으로의 여행’은 그중 대표적인 예다. 빅뱅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잃어버린 시공간을 재구성한다. 지질학 연구의 기본 원칙이 훌륭한 조각의 형식 원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일깨운다. 관객은 지질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구와 인간의 역사의 숨겨진 지층을 더듬는 짜릿한 감흥에 빠진다.

콘크리트와 벽돌, 알루미늄, 골판지, 스티로폼 등을 여러 겹으로 뭉쳐 만든 구 형태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구형의 형태감과 일상적 재료의 결합 속에서 예술과 비예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인간사의 지층을 캐는 고고학적 체험을 맛본다.

오르테가는 런던의 플루이드 미술관, 바비칸 센터,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5월11일까지.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