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전염병 '파나마병 변종' 확산"…'바나나겟돈' 오나?
청마의 해 2014년 4월말 영어식 발음이 ‘버내너’인 바나나가 대한민국 인터넷에서 최대 이슈 중 하나로 급부상했습니다.

예컨대 바나나는 23일 오전 한 포털 사이트의 핫 이슈 검색어에서 최상단을 점유한 채 요지부동입니다. 때문에 언론들은 ‘바나나 전염병’ 을 키워드로 한 기사를 앞다퉈 쏟아내는 실정입니다.

국내에서 이날 이처럼 바나나가 주목받은 이유는 이 과일의 ‘흑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두 사건이 최근 거의 동시 표면화한데서 비롯합니다.

하나는 남미 콜롬비아 역사상 최대의 비극적 사건으로 불리는 ‘바나나 대학살’(1928년 발생)을 배경으로 한 작품 ‘백년 동안의 고독’의 저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타계 소식 (4월 17일)이지목됩니다.

바나나 농장을 독점하기 위해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트사가 진출했던 콜롬비아 북부의 작은 해안 마을 아라카타카에서 1927년 태어난 마르케스는 이 작품에서 그 사건을 이처럼 묘사 합니다.

“12시가 되자 3000명이 넘는 주민과 노동자, 여자와 아이들이 역전 광장으로 몰려나와 인근 거리를 가득 메웠고, 그들의 앞을 줄지어 늘어선 기관총이 가로막았다…14정의 기관총이 동시에 대답했다….”

2010년 국내에 출간된 댄 쾨펠의 ‘바나나 (김세진 역)’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등장합니다. “미국 회사들이 진출해 바나나를 대규모로 경작한 콜롬비아에서 1920년대 초부터 정당한 보수지급과 작업환경 (농약 중독)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1928년 10월엔 노동자 3만2000명이 파업에 나섰다. 바나나 회사는 이에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12월 5일 계엄령이 선포됐다. 다음 날 시에네가 도시 광장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바나나 노동자와 가족들이 모였다.

5분 안에 구역을 깨끗이 비우라는 명령을 받은 콜롬비아 군인들은 기관총 4정으로 무차별 사격을 했다. 이날 미국 대사는 ‘(군인들이) 1000명 이상을 사살 (실제론 2000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짐)했다’고 보고했다.“

국내 인터넷에서 바나나가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바나나 전염병의 확산으로 이른바 ‘성경에도 등장한다는‘ 이 과일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미국의 경제전문 채널 CNBC이 최근 재삼 보도한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나나‘란 책에서 경고가 나온 이래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요.

이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1989년 바나나의 불치병으로 불리는 ‘파나마병’의 변종균 TR4를 처음 발견한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플로츠 교수는 ‘이 곰팡이균이 빠르게 확산하며 중남미의 바나나 생산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어디까지 퍼질 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각종 외신과 댄 쾨펠 작 ‘바나나’에 따르면 파나마병은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치명적인 병으로 불립니다.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이 병에 걸린 바나나의 잎은 갈색으로 변한 후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바나나 농장들은 이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품종을 개발해 한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캐번디시에서도 창궐하는 ‘변종 파나마병’이 대만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바나나 멸종을 막으려는 과학계의 노력이 무색해졌다는 분석입니다.

현재로선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다고 합니다. 변종 파나마 병은 2~3년 내 바나나 농장 전체를 고사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의 바나나 재배 구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먹는 바나나 대부분이 ‘캐번디시’라고 하는 한 품종 뿐 이라는 것이 꼽힙니다. 이론상 수십억개 바나나 중 하나만 파나마병에 걸려도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바나나는 이런 특성 때문에 어떤 품종이 다양성을 잃었을 때 멸종위기를 맞을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곤 합니다.]

과학자들과 바나나 업계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앞서 CNBC의 보도에서 처럼 변종 파나마병이 지구촌 바나나의 최대 공급처인 남미 지역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들립니다. 그동안 변종 파나마병은 대만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만 주로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올 들어 요르단과 모잠비크에서도 변종 파나마병에 걸린 바나나가 발견되는 등 파나마병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질 조짐을 보인다는 게 세계식량기구 FAO의 우려입니다. 이 경우 전 세계 바나나 공급량이 최대 85%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실정이고요.

때문에 한 미국언론은 이런 위기상황을 두고 ‘바나나겟돈 (bananageddon)’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바나나 (banana)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친 말입니다.

FAO에 집계에 따르면 바나나는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중요한 작물이며 개발도상국에게는 4번째로 중요한 작물로 손꼽힙니다. 국내에서도 앞으로 바나나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미지=스마트폰 촬영]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