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중견 및 대기업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중견 및 대기업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 김정훈 기자 ] "중견기업과 대기업 간 성장 사다리가 끊어져 있어요. 규제 풀지 않으면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이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수십년 뒤엔 현재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국내 유수 대기업들도 사라지게 될지 모릅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58·사진)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대기업에 쏠리는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며 "규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경제력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성장에 가장 큰 장애는 제도적 요인이며, 그 중에서도 가업승계 단절을 우선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가 중견기업들과 정부의 정책 공조를 강화할 목적으로 출범시킨 이슈별 위원회(10개 분야) 중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8일 경기도 판교 NS홈쇼핑 본사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 규제 강화로 우리 기업들에 나타난 현상은.

"정부 규제로 대기업 숫자는 줄고 중소기업은 늘어나 카니발리즘(동종 잠식)이 생겼다. 우리나라 기업 분포 구조를 보면 중소기업 비중이 너무 높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중소기업 비중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른다. 중견·대기업은 0.09%에 불과하다. 전체 기업 수는 늘어나지만 중견·대기업 비중이 더 줄어드는 추세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일감은 적고 경쟁업체가 많아 중소기업들이 힘들어한다.

독일의 경우 9.5%가 중견 · 대기업이다. 독일처럼 중견 · 대기업 비중이 10% 가까이 돼야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해소되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된다. 지금 구조에선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대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 규제가 풀리면 기업 환경 좋아지나.

"중소기업을 졸업해서 중견기업이 되고 나면 지원은 끊기고 규제가 늘어난다. 규제를 풀면 시장에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뛴다. 독일 기업처럼 자발적으로 협업하면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기업들도 의욕이 생긴다. 이게 창조경제다. 반대는 규제 경제다. 창조의 바탕은 창의고, 창의의 바탕은 자유다.

결국 규제를 풀어놓으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서는 회사는 몇백 개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에 일감 많아지고 일회성 상속세보다 더 많은 세수가 확보된다.

-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든 이유는.


"가업승계를 통해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행 상속세제에서 실효 세율은 최고 65%에 이른다. 기업을 승계하려면 상속 주식의 약 80% 정도를 매각해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현실에서 가업 승계는 어렵다. 상속세 부과는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혜택이 있으나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기업 규모에 적용되지 않는다. 가업 승계가 단절되면 기업가 정신과 책임경영, 기술 노하우 등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 히든 챔피언과 같은 경쟁력 있는 장수기업으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인터뷰] 김홍국 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장 "성장 사다리 끊는 규제 풀어 중견 · 대기업 늘려야"
- 히든 챔피언 많은 독일은 어떤가.


"매출 4조5000억 원 이상, 경쟁력 세계 3위 안에 드는 히든 챔피언은 세계에 2700여개가 있다. 이중 독일이 1300여개로 전체 46%다. 우리나라는 몇개 밖에 없다. 독일에 가봤더니 70~100년 된 히든 챔피언들이 많다. 평균 3대 를 이어온 기업들이다. 독일은 가업을 승계해 7년간 경영하면 중소·중견·대기업 구분없이 상속세가 100% 면제된다.

여러 대에 걸쳐 경쟁력을 쌓고, 유지할 수 있는 가업승계가 이뤄져야 비로소 히든 챔피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의 상속 개념이 아니라 기업 철학의 영속성으로 봐야 한다. 독일 업체들은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를 갈고 닦아 최고의 기업이 됐다.

상속 기업들이 경쟁력이 더 강해진다. 독일은 가업 상속기업이 전체의 95%에 달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대부분 2~3대에 걸쳐 가업승계가 이뤄진 기업들이다. 우리나라 가업 승계와 관련된 규제들은 독일처럼 기업의 지속성을 보장해주는 대신 기업이 고용과 경제성장에 기여토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

- 중소기업 일감 문제 심각하다.

"많은 이들이 삼성전자가 없어지면 중소기업이 살아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사라지면 부품을 조달하며 생태계를 이룬 협력 중소기업들이 함께 도산하고, 그 시장 자체가 사라진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하나가 생기면 협력업체들이 많이 생긴다. 대기업이 없어지면 중소기업도 사라진다.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사가 되려면 경쟁이 심하다. 납품가 경쟁 등으로 서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나 홈쇼핑에 납품 하는 것도 어렵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일감은 적고 경쟁 업체는 많으니깐 중소기업들이 힘들어진다."

- 청년 실업 해결이 쉽지 않은데.


"중견·대기업이 늘어야 청년 실업이 해소된다. 아무리 중소기업을 지원해서 일자리 창출한다고 해도 청년 실업이 더 악화됐다. 젊은이들은 중견기업 이상 돼야 취업하려고 한다. 독일은 좋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중견 · 대기업이 전체 고용의 56%를 담당한다. 우리나라는 20%에 불과하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지난해 경제지 포천 500대 기업 리스트에 14개 한국 회사만 이름을 올렸다. 5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중국은 89개로, 매년 10개씩 늘어나고 있다.지난해 기준 62개 대기업 집단 가운데 1980년 대 이후 출현한 경우는 6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민영화 된 공기업, 외국계 기업, M&A(인수합병)에 의해 탄생한 기업이다."

- 앞으로 위원회 활동은.

"중견련 회원사들로부터 규제 및 애로과제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56개의 규제 개선과제가 발굴됐다. 앞으로 관련 부처 건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