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저 바다는 아직도 100명이 넘는 아들 딸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슬픔도 잦아들지 못한다. 총리가 책임사퇴키로 했고, 야당 리더들은 비판의 칼날을 던지고 있다. 국민적 공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대충대충! 건성건성!의 국민성을 벌주는 것으로는 너무도 잔혹하다.

사퇴의 변도, 야당 대표의 공세적 회견도 도식적이고 상투적이다. 무능·무기력한 행정이요 고함만 질러대는 무책임한 정치다. 뒤늦은 책임 공세는 공허하게까지 다가온다. 물론 강하게 문책해야 한다. 사퇴 정도가 아니라 책임선상에 있는 당국자는 끝까지 가장 강력한 법적 응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 숫자가 얼마든 상관없다. 국가 대(大)개조론이 제기되는 이 마당에도 정치권은 이전투구 기세다.

국가임무를 복지로 착각했던 지난 20년

국회와 정치권이 이 비극적 상황의 1차 책임자요 공범이다. 복지천국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느라 국가 경영의 기본 점검사항들을 모두 건너뛰었다. 안전문제는 뒤로뒤로 넘어갔다. 올해부터 복지예산만 100조원 시대다. 기초연금 확대와 무상지원엔 너도나도 앞섰지만 어느 정당도, 어떤 의원도 안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선박 입항 및 출항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제안된 것은 지난해였다. 개항질서법과 항만법에 분산된 입출항 규정을 통합, 항만관제를 강화하고 선박의 운항여건을 더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15개월간 방치됐다가 지난 주말에야 허겁지겁 농림축산위를 통과했다. 해상안전 관련법 7개는 이렇게 뒤늦게야 처리됐다.

무상급식과 기초연금 이젠 무상교통까지, 복지에서만큼은 여야 간 경쟁에 끝이 없었다. 4년 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주도한 무상급식 공약으로 2010년 5630억원이었던 이 예산이 올해 2조6239억원으로 3.7배나 늘어났다. 명퇴예산이 없어 새 교사 발령비율은 예년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비 새고 금이 간 낡은 교실을 손볼 예산이 없어진 것도 그 뒷면이다. 내일은 어느 삭은 교실이 붕괴할지 모른다. 무너지는 게 교사(校舍)만이랴. 이상주의적 학생인권 보호조례란 것으로 훈육의 책임감도, 면학과 질서의 기풍도 모두 날려버렸다. 국가의 임무를 복지에만 있다고 착각해온 지난 20년 적폐의 결과가 이번 대참사였다.

법과 원칙 훼손한 싸구려 민주주의

공직사회조차 그렇게 싸구려 민주주의에 휩쓸렸다. 팽목항의 우왕좌왕 지휘체계와 아수라장 같은 진도 바다의 현장대응이 사고 직후 절체절명의 48시간을 놓쳐버린 것도 필연적 결과였다. 복무자세가 안 된 무능력한 공직 기강 때문이었다. 해수부를 정점으로 해운조합에 선주·선박·선사 등의 온갖 협회마다 ‘해피아’의 공공연한 연결고리가 드러났다. 이게 공직의 현실이다. 제복경찰의 법집행에 먼저 멱살을 잡는 것이 국회의원 나리들이시다. 가뜩이나 떼법 불법 가리지 않는 판에 누가 법치주의를 중하게 여기겠나.

그나마 있던 매뉴얼들도 무시됐다. 한경 사설이 거듭 지적했듯이 통제 불능, 복무 불이행의 태만한 기강으로 공직의 정상적인 명령집행체제가 세월호보다 먼저 무너져내린 것이다. 이 와중에 기념사진을 찍고 가족동반의 외유성 해외시찰에도 일선 공무원들이 몰려나갔다.

저질 정치가 안전 불감증을 조장

안전은 결국 비용이다. 안전투자는 사고가 없으면 그것의 필요성을 잊는다. 그러니 정치인들의 관심이 있을 수 없다. 거대 도시는 화약고다. 어느 정당도, 어느 부처도 한번이라도 그런 문제에 경고의 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쪽, 뒤쪽은 누구도 외면했다. 안전규정 챙기기와 위험에 대비한 상시 투자는 사회 인프라구축의 출발이다. 선심, 인기와는 거리가 먼 영역이다. 가뜩이나 복지에 매달리면서 사회안전 예산은 실종이다. 너무나도 큰 희생 끝에서야 깨닫는 문제다.

개선책도, 문책의 수순도 지켜볼 것이다. 우리는 우선 정치가 바뀌고 저질 민주주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직 기강이 되살아나고 공직이 이익집단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그런 집단이기를 바란다. 대통령부터 9급직에까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 어리석은 세월호 조타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