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4일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에 특이한 안건이 상정된다. 미국의 주식 트레이딩 업체인 A사에 대해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 A사는 한국의 야간 선물시장에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매일 밤 초당 수백건에 달하는 주문을 내는 소위 ‘알고리즘 매매기법’으로 가격 결정에 인위적으로 개입, 1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 외국 업체가 알고리즘 매매로 검찰 고발 대상이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한국 선물시장에선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야간 선물시장에 무슨 일이…] 밤이면 밤마다 '외국인 놀이터'된 KOSPI선물 시장
美 A사가 주무른 야간선물시장

사건은 2012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거래소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뜬금없이 “야간선물시장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코스피200지수 야간선물시장은 급팽창 중이었다. 하루 평균 계약 건수가 5만5765건(거래일 기준)으로, 2009년 개장할 때에 비해 40배 이상 불어나 있었다. 비정상적 확장 뒤엔 외국인의 ‘수상한 주문’이 있었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판단이었다.

정밀조사에 들어간 금융감독원은 이듬해 시장을 주무르는 ‘큰손’을 찾아냈다. 바로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A사였다. 이 회사가 코스피200지수 야간선물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2012년 초. A사는 ‘성능 좋은’ 알고리즘 매매 프로그램을 무기로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집중적으로 사고팔았다. 주무대는 장중에 열리는 정규 선물시장보다 참여자 수가 적은 야간선물시장이었다.

금융당국은 A사가 선물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면 지수보다 2틱가량 높게 매수호가를 내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개미’들이 따라붙으면 미리 잡아놓은 매수물량을 개미들에게 떠넘기며 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코스피200지수 선물 가격이 260.00에서 260.05로 상승하면, A사는 알고리즘 매매를 통해 2틱(0.10) 높은 260.15에 사겠다는 매수주문을 쏟아낸다. 상승 움직임을 포착한 개미들이 매수대열에 붙는다. A사는 가격 상승 전인 260.05에 잡았던 물량을 털어내는 식으로 수익을 낸다. A사는 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스스로 매도주문과 매수주문을 함께 내는 가장매매 혐의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012년 당시 A사는 코스피200지수 야간선물시장에서 나온 전체 호가 주문의 10% 안팎을 차지했으며 체결 기준으로는 20%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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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매매 적법성 논란

A사는 금융당국의 처벌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통해 “알고리즘 매매의 특성을 활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리 입력한 프로그램에 의해 컴퓨터가 스스로 주문을 내고 매매를 체결한 것이지, 고의적으로 시세를 움직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알고리즘 매매는 기술 발달로 개발된 새로운 매매기법일 뿐 그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초당 수백건의 주문을 낼 수 있는 특성상 다른 매매기법에 비해 가격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장 규모와 참여자 수가 적을수록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은 “알고리즘 매매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시세를 움직일 목적이 있었다면 불공정거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알고리즘 거래는 매매 속도의 차이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주문을 가로채는 기법”이라며 “공정한 거래인지에 대해 금융당국이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감원이 A사 조사에 들어간 이후 야간선물시장 하루 거래 건수는 A사 등장 전인 2011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선 적정한 감시가 없다면 야간선물시장에 ‘제2, 제3의 A사’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프로그램 매매기법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 알고리즘 매매

컴퓨터가 ‘미리 설정된 변수와 조건’(알고리즘)에 따라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매매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매매다. 주식·선물시장 등에서 목표가격, 수량 등 매매 조건을 설정해 초당 수백·수천건 이상의 주문을 낼 수 있다.

■ 틱(tick)

선물계약의 매수, 매도 주문시 내는 호가 단위. 코스피200지수 선물시장의 한 틱은 0.05로 선물거래소마다 상품별로 그 크기를 표준화해 놓고 있다. 한 틱의 가격은 0. 05×50만원(거래단위승수)=2만5000원. 선물 1계약 가격은 해당선물지수×거래승수이지만 증거금(선물가격의 15%)만으로 계약 체결이 가능하다.

허란/오상헌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