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이 달러당 1020원대까지 상승했다. 5년9개월 만에 최고치여서 환율에 민감한 수출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싸늘히 식고 있다. 수출 가격 경쟁력 저하는 물론 수출 대금을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환차손도 발생, 이익이 줄고 주가도 타격받을 것이란 시나리오에서다.
원·달러 1000원 눈앞…급제동 걸린 코스피
○원화값 5년9개월 만에 최고

코스피지수는 7일 전 거래일보다 19.56포인트(1.0%) 하락한 1939.88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3000억원대 매도 우위를 보이며 장을 흔들었다.

원화값 상승으로 기업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겹친 결과다. 중국 부동산 거품 논란도 이날 지수를 끌어내리는 무게추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원화값 급등이 수출기업들의 실적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매출순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손익분기점이 될 수 있는 원·달러 환율은 1066.4원이었다. 원화값이 10% 오르면 영업이익률이 0.9%포인트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대표적 수출기업인 현대차는 원화값이 달러당 10원씩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이 1000억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서치업체 올라FN의 강관우 대표는 “원화값 상승이 미국 경기 하강국면 진입, 중국 경착륙 우려 등 다른 악재들과 맞물려 파괴력이 커졌다”며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만큼 당분간 약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000원 근처에서 머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달러로 입금되는 수출대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데다, 급격한 원화 강세로 환전을 미룬 대기 매물도 많다”며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선다고 해도 1000원 붕괴를 막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화 절상은 악재 아닌 호재”

원화값 상승을 악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기업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탄탄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화값 강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마다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입된다는 점도 이런 주장의 근거다.

실제로 과거 원화가 강세였을 때 지수 역시 강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화값이 달러당 900원대에서 1500원 이상 급락했던 2008년 코스피지수는 한 해 동안 40% 이상 떨어졌다. 반면 원화값이 1100원대 중반까지 오른 2009년에는 지수 상승률이 50%에 육박했다. 원화값이 안정적인 강세를 나타낸 2010년에도 코스피지수는 22% 상승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화값 상승이 단기적으로 투자심리를 압박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호재”라며 “원화값이 900원까지 오를 만큼 수출이 잘되면 코스피지수가 적어도 2500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강세 국면이 이어지면서 수출업체들이 환율 방어력을 더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대표적인 환율 민감주인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각각 0.89%와 0.36% 떨어졌다. 주가는 약세였지만 낙폭이 1%에 달한 코스피지수 하락률보다 양호한 성적이라는 설명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