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을 찾은 중국 현대 수묵화가 티엔리밍이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도시의 소리’ 앞에 서있다. 정석범 기자
22일 서울을 찾은 중국 현대 수묵화가 티엔리밍이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도시의 소리’ 앞에 서있다. 정석범 기자
중국의 대표적 현대 수묵화가 티엔리밍(58)의 작품은 마치 빛바랜 오랜 그림 같다. 채색은 너무나 엷고 형상은 어슴푸레해 마치 안개 저편의 희미한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 풍경은 갑갑증을 일으키기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23일 막을 올리는 ‘햇빛, 공기, 물: 티엔리밍 중국화전’은 중국 현대수묵화의 새로운 경향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시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저우스춘 등 대가로부터 인물화를 배운 티엔리밍은 1988년 ‘신문인화’전에 참여하는 등 ‘신수묵화’의 선구자가 됐다. 1984년부터 25년간 모교에서 후학을 지도했고 2010년부터 중국예술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시골 처녀’ ‘도시’ ‘고사’ ‘화조’ ‘88담묵시리즈’ 등 여섯 개의 연작 33점이 출품된다.

그는 중국의 오랜 회화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작품 창작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특히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사람과 주변 환경을 나누는 윤곽선을 없앰으로써 전통적인 몰골법(윤곽선 없이 대상을 묘사하는 기법)을 적극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렬한 색채를 피하고 안료에 물을 많이 섞어 엷은 색조를 구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장치다. 작가는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며 “차가운 현대 도시문명조차 중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의 그림에는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감돌며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빛바랜 분위기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만들어 내 차가운 도시문화에서 비롯된 긴장감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도시인’ ‘도시의 여자아이’ ‘도시의 소리’는 각박하기보다는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며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과거의 전통을 단순히 계승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 요소도 덧붙이고 있다. 특히 빛의 요소는 빼놓을 수 없다. ‘물 위의 햇빛’에서처럼 그의 화폭에 감도는 은은한 빛의 느낌은 19세기 인상주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작품에 몽환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6월15일까지. (02)720-1524~6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