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한적
[천자칼럼] 하모니카
한 시골 농가. 상속받은 땅을 일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장은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를 분다. 그 선율에 맞춰 한때 오페라 가수였던 아내는 노래를 부른다. 여리고 가냘픈 하모니카 소리에 실려 퍼지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 영화 ‘마농의 샘’에 나오는 멋진 장면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전장의 고요 속으로 울리는 하모니카 소리도 잊을 수 없다. 병사들은 전쟁 중이라는 것조차 잊고 그 소리에 빠져든다. 참호 위로 팔랑거리며 나비 한 마리가 날고, 그 평화로운 모습에 손을 내밀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저격병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날숨과 들숨으로 빚어내는 화음이어서 그럴까. 하모니카의 멜로디는 경쾌하면서도 애잔하다. 기원전 중국에서 만든 대나무 쉥(sheng)의 울림도 그랬을 듯싶다. 오늘날의 형태는 1827년 독일의 19세 편물직공 소녀가 아코디언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1821년 독일 시계공과 1829년 영국 사람이 최초라는 설도 있다.

대중에 보급된 것은 1857년이니 불과 150여년 전이다. 그때 대량생산한 독일 사람 이름을 딴 호너(M Honner)가 세계 최대 하모니카 제조회사다. 우리나라에는 20세기에 들어왔다. 1920년대 평양고보 하모니카합주단에 이어 1935년 평양 YMCA하모니카 밴드, 1936년 평양 샌니하모니카5중주단이 잇달아 출범했다.

하모니카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리드 2개로 복음을 내는 방식인데 문방구에서도 살 수 있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옆에 레버가 있어서 반음을 연주할 수 있고 속주도 가능한다. 10구멍짜리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낮은 파, 라 음을 낼 수 없어 이를 밴딩 주법으로 만들어낸다.

하모니카는 작은 몸집에 비해 피아졸라의 탱고와 어려운 팝까지 두루 연주할 수 있어 ‘작은 오케스트라’로도 불린다. 하지만 어릴 적 뒷동산에서 불던 ‘문방구 하모니카’의 추억이 가장 아릿하다.

그제 저녁 정규재tv 야외 행사에서 들은 소설가 복거일 씨의 하모니카 연주 또한 잊을 수 없으리라. 간암 치료도 거부한 채 필생의 작품에 매달리고 있는 그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들려준 ‘고향의 봄’은 눈물겨웠다. 그 애달프고도 서러운 멜로디의 물결은 듣는 사람의 가슴과 봄밤의 꽃향기를 함께 적신 애상의 극치였다. 그렇게 젖은 마음을 달래주려고 연주한 샹송 ‘파리의 다리 밑’은 또 얼마나 애틋하고도 정겹던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