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미친 은행원' 김순응 컬렉션 첫 경매
1970~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한국화의 위세에 눌린 탓이다.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 것은 곧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로 통했다. 그러나 스스로 ‘그림에 미친 은행원’이라고 부른 한 컬렉터의 시선은 달랐다.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61·사진)다.

한국적 모더니스트 장욱진, ‘한국의 로트레크’ 손상기, 판화가 오윤, ‘묘법 화가’ 박서보, 오치균 등에 이르는 폭넓은 컬렉션은 그의 이름을 따 ‘김순응 컬렉션’으로 불린다. 김 대표가 오는 16일 서울 신사동 K옥션 경매장에서 30년 컬렉션 500여점 중 오치균, 이동기, 마리킴, 이진용의 작품 20점을 골라 경매하는 이색 행사를 연다.

1978년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한 김 대표는 23년간의 금융사 직장 경력을 과감히 버리고 미술계에 뛰어든 인물로 불모지였던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을 이끈 일등공신.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그는 2000년 초 하나은행(자금부장)을 떠나 서울옥션(2001~2004)과 K옥션(2005~2011) 대표로 일하다가 2011년 5월 현재의 아트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다.

김 대표는 미술작품을 수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순전히 예술로서의 미술을 사랑했다”며 “어쩌지 못할 만큼 마냥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미술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0년대 말. 당시 서울 인사동 전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신진·중견 작가의 작품을 사모았다. ‘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가치주를 사 놓고 때를 기다리듯이 소외된 젊은 작가의 작품에 투자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미술에 관한 지식도 미비했던 그는 “매일 현장에서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작품 그대로가 훌륭한 스승이었다”며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지금 소장하고 있는 판화가 오윤의 ‘춤’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30대에 요절한 손상기 화백”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그림을 사기 위해 빚을 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죠. 그동안 어려움도 많이 겪고 ‘수업료’도 많이 냈지요.”

김 대표는 14일 오후 3시 K옥션 경매장에서 미술애호가들과 아트토크도 진행한다.(02)3479-88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