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딜로이 섬의 토기 조각
여름이면 지중해의 바닷빛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운 역사 현장이 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지중해에 떠 있는 작은 섬, 딜로이 유적지에서 만났던 작은 토기 한 조각을 나는 지중해의 푸른 바닷빛만큼 맑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딜로이 섬은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스부터 로마 시대까지 지중해 해상 거점의 하나였다. 여러 도시국가들이 동맹을 맺어 평화로운 해상교역을 할 때 일이다. 때문에 이 섬에서는 그리스 문명의 특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석조건축물과 물길을 관리했던 수로시설의 장대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섬의 역사를 설명하고 출토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한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을 뿐, 유적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옛 성벽과 신전, 건축물들은 붕괴된 그대로 잡초에 쌓여 있어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쓰러져 있는 돌기둥 하나에도 감탄하고, 번성했던 고대 역사를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건축물 주변에는 붕괴 당시를 보여주듯 깨진 토기, 도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눈에 익은 토기 한 조각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울산 울주군 하대리 5세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됐던 소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토기와 매우 흡사한 소뿔 모양 손잡이 조각이었다. 놀라움에 가슴이 뛰었다. 혹시 실크로드를 따라 흘러간 동서 문명 교류의 흔적이 아닐까, 역사적 교류의 광대함에 감격해 함께 갔던 친구를 소리쳐 불렀다. 그 토기 조각이 우리 신라 토기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20여명의 한국인 중에서 나와 친구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여름만 되면 그 토기가 떠올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리스 유적 토기 한 조각이 우리 신라 토기와 동질성이 있다”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대한민국이 영토는 작아도 문화적 영역은 참 광대했을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또 우리나라를 찾는 세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이 경주에서 보는 신라 유적의 모습이, 1000년을 훌쩍 넘어 동서 문명이 소통했던 역사의 현장 중 일부라고. 이를 별 설명 없이 그들이 스스로 아는 날이 오기를, 지중해 섬에서 만난 토기 한 조각에 소망을 담아 빌어 본다.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