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달 28일 카자흐스탄 서부지역 유전 개발과 관련된 분쟁에서 에너지 전문 기업인 세하를 대리해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승소 판정을 이끌어냈다. 세하는 2005년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카자흐스탄 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했지만 광구 권리가 취소되는 등 사업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파트너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카자흐스탄 법원에서는 패소했지만 유리한 사실관계를 찾아내는 등으로 약 170여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을 이끈 김앤장의 윤병철 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해외자원 개발 투자와 관련한 최초의 승소 판정”이라며 “현지 로펌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겼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아웃바운드)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국내 로펌들의 업무 영역이 해외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동안 국제통상 분쟁이 발생하면 국내 로펌들은 ‘찬밥’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따져보지도 않고 외국 로펌들에 100%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성범 화우 변호사는 “국제통상 분쟁 사건은 수임료가 4억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해 국내 로펌의 ‘블루오션’이 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Law&Biz] 1조원대 해외 분쟁서 '방패' 든 국내 로펌들
◆국내 기업의 해외 분쟁 ‘블루오션’

소송 규모가 1조원대를 넘는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국내 로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코오롱과 듀폰의 아라미드 섬유 소송, 일본 신일본제철과 포스코의 고기능 강판 제조 기술 소송, 일본 도시바와 SK하이닉스의 플래시메모리 기술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광장이 듀폰-코오롱 소송, 신일본제철-포스코 소송에서 국내 기업 측을 대리해 글로벌 로펌과 함께 사건을 맡고 있다. 화우는 SK하이닉스 측을 대리해 해외 로펌과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종래 이런 사건들은 국내 로펌이 참여할 여지가 적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미국 기업과의 소송에서는 대부분 미국 로펌을 직접 이용하고 있다. 미국 2차 전지업체인 셀가드로부터 특허 공격을 받은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경우도 그랬다. 셀가드는 지난해 5월 SK이노베이션에 소송을 건 데 이어 올 1월 LG화학에도 분리막 기술을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미국 지식재산권 분야의 선두 로펌인 핀나간(Finnagan)이 SK이노베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LG화학도 미국 10대 지재권 분야 로펌에 소송을 맡겼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회사 내에 미국 변호사가 있어서 직접 글로벌 로펌과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굳이 국내 로펌과 함께 소송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 LG화학 등은 미국 변호사만 10명 안팎 규모다. 10대 그룹의 경우 외국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외 로펌 컨트롤 어려워

문제는 국내 기업이 해외 로펌에 직접 사건을 맡겼을 때 따르는 위험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10대 그룹 법무실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이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 등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로펌에 사건을 맡길 때는 소송 비용, 전략 등에서 법무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글로벌 로펌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 로펌은 타임차지(시간으로 보수를 계산)로 수임료를 계산하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대기업과 유럽 회사 간 군사용 무기를 둘러싸고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벌어졌을 때 국내 법원에 청구된 손해배상액은 1억원 정도였지만 해외에서는 약 800억원에 달했다. 또 미국에서 손가락 무릎 상해 등 산업 재해 소송이 생기면 10억원 이상이 청구된다. 소송 가액이 비싸면 로펌에 들어가는 비용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특허권 등 예상되는 법률 분쟁에 대비해 2년간 글로벌 로펌에 일을 맡겼지만 막판에 계약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글로벌 로펌의 경우 국내 기업의 신뢰를 잃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