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의 절반이 서울대 KAIST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 9곳(중소기업청의 스타트업 지원사업인 TIPS 참여 업체)이 2012년 이후 투자한 103개 스타트업 대표의 출신 대학을 조사한 결과다. 스타트업 대표의 출신 대학을 보면 서울대가 21곳(20.3%)으로 가장 많고 이어 KAIST 12곳(11.6%), 연세대 9곳(8.7%), 고려대 7곳(6.8%)이었다. 이들 네 개 대학 출신자가 47.4%를 차지한 것이다. 다음은 한양대(6곳) 포스텍(4곳) 세종대(4곳) 서강대(3곳) 아주대(3곳) 등의 순이었다.
스타트업 창업자 절반,  SKY·KAIST 출신
○앞에서 끌어주는 벤처 선배들

명문대 출신의 창업이 많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공한 선배들의 영향’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도현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기반과장은 “일반적으로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선배를 역할모델로 삼는다”며 “서울대 KAIST 연세대 등에 성공한 벤처 1세대가 많고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를 창립한 이해진 의장, 넥슨의 김정주 대표,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 등이 서울대 출신이다. 인터넷 포털 다음을 만든 이재웅, 이택경 공동창업자와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연세대 출신으로 후배 창업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VC 대표들이 출신 학교 후배를 끌어주는 경향도 감지된다.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는 포스텍 출신으로, 투자한 업체의 33%가 포스텍 출신 후배가 세운 회사다. KAIST 출신 김철환 이사장이 이끄는 카이스트창업가재단이 투자한 11개 스타트업 중 네 곳의 창업자가 KAIST를 졸업했다. 조사 대상 VC 대표 10명(공동대표 포함)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KAIST 네 명, 서울대 두 명, 연세대 포스텍 이화여대와 미국 매사추세츠대가 한 명씩이었다.

동문회 차원의 지원도 눈에 띈다. 포스텍을 제치고 5위를 기록한 한양대 동문회는 ‘한양 동문 스타트업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후배들의 창업을 돕고 있다. 벤처 동문들로 이뤄진 한양엔젤클럽에서 자금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창업보육센터 입주까지 돕는다.

○대학 정책·분위기가 좌우

학교 정책과 분위기에 따른 차이도 나타난다. 고려대는 재학생 창업을 돕기 위해 최대 5년의 창업휴학제도를 도입했다. 세종대는 컴퓨터공학과 동아리 ‘엔샵’ 등 동아리 중심의 창업 붐이 일고 있다. 성균관대는 학교 명성에 비해 창업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중 성대 출신 스타트업은 전무했다. 성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최근 대기업에 입사한 정우준 씨는 “벤처 창업으로 성공한 선배가 드물고 학과 커리큘럼도 창업보다는 취업에 초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후견 기업이 있기 때문에 불확실한 창업보다는 삼성 취업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창업가의 자질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은 “창업에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길고 지난한 과정을 헤쳐나갈 창업자의 집념과 학습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런 자질은 공부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검증된 스타트업 창업자의 학벌이 좋을 확률도 높다”고 설명했다.

명함정리 서비스 ‘리멤버’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대표는 “창업 스타트업의 모수 자체가 명문대 출신이 많아 투자받은 업체도 많다”며 “이들은 자존감이 높아 자신의 창업 성공 확률을 높게 보고 쉽게 창업에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