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82) 김의경(78) 오태석(74) 등 한국 연극계 원로 극작·연출가들의 작품 세 편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초연된 작품을 새롭게 구성해 재연하는 무대다. 서양 고전과 번역극, 창작 신작 등이 점령한 최근 국내 연극 무대에 보기 드물게 펼쳐지는 ‘원로 극작가 열전’으로 연극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정옥 극본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김정옥 극본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12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이 오른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오는 18일까지 공연)는 ‘한국 연극계 대부’로 불리는 김정옥 극단 자유 예술감독이 극본을 쓰고, 이 극단의 최치림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김 예술감독과 함께 극단 자유(1966년 창단)를 이끌었던 이병복 무대미술가(88)가 미술총감독으로 참여했다.

2002년 김 예술감독의 딸인 김승미 연출가가 ‘화수목 나루’란 제목으로 초연한 작품이다. 집단 창조와 총체 연극을 표방해온 극단 자유의 성격이 짙게 묻어난다. 전통 무속신앙을 연극적으로 해석해 고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적대 관계인 공주와 왕자의 운명적 사랑과 죽음을 씻김굿과 몸짓, 영상, 조명, 음악, 음향 등으로 표현한다. 김 예술감독은 “극단 자유가 1992년 총체연극으로 선보인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에서 싹튼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박웅 오영수 권병길 채진희 등 출연.

김정옥 극본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김정옥 극본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1993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개관 기념으로 초연된 ‘백마강 달밤에’는 ‘연극 명장’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가 특별히 애착을 갖는 작품이다. 극단 목화 창단 20주년인 2004년 재연된 데 이어 30주년인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오는 20일부터 내달 6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오태석 특유의 역사 뒤집기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은산별신제’를 원형으로 전통 연희와 서양 극 형식을 아우른다. 의자왕과 그를 시해한 금화, 백제 충신 성충과 계백 등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원수였던 사이가 원한을 풀고 서로 화평하게 지낸다는 의미를 담은 ‘사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오 대표는 “서로 이를 갈고 대립하는 이 시대에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며 “관객들이 더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연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정진각 손병호 성지루 박희순 이원승 등 출연.
오는 24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김의경 극본의 ‘길 떠나는 가족’.
오는 24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김의경 극본의 ‘길 떠나는 가족’.
오는 24일부터 내달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화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무대화한다. ‘남한산성’ ‘처용무’ 등과 함께 극작가 김의경 백민역사연극원장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김 원장은 이중섭에 대해 “조국의 화가였고, 국경을 넘는 인간애의 사나이였으며 자유와 평화의 염원으로 가득 찬 예술인이었다”고 평가했다. 1991년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초연 연출을 맡아 그해 서울연극제 작품상과 희곡상, 연기상을 받았다.

23년 만에 다시 작품을 연출하는 이 예술감독은 “주변 앙상블을 보완하고 녹음 음악이 아닌 라이브 연주를 사용해 초연보다 시청각적으로 나아진 무대 리듬을 보여주겠다”며 “대사 하나하나를 찍어 치듯 발성하는 낭만주의적 연기 방식은 그대로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현준 문경희 전경수 등 출연.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