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급증하는 삼성전자의 수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무역금융시장을 외국계 은행에 내주고 있다. 최근 3년 새 삼성전자의 수출 물량은 50% 급증한 데 비해 은행 자기자본은 10% 증가에 그쳐 동일인 여신 한도를 꽉 채웠기 때문이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 신한 하나 외환은행 등의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동일인 여신 한도는 법정 한도인 25%를 넘나들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등의 수출 무역금융을 취급하고 싶어도 한도 초과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외국계 은행에 업무를 넘겨주고 있다.
삼성 수출 감당 못하는 은행들
동일인 여신 한도란 특정 그룹 계열사에 대한 여신과 매입외환 등의 한도를 은행 자기자본의 25%(개인과 개별 기업은 20%)로 제한하는 제도다. 이를 위반할 경우 초과한 금액(여신)의 10%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은행들의 삼성그룹에 대한 동일인 여신 한도가 꽉 찬 것은 삼성전자의 수출이 큰 폭으로 늘면서 매입외환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매입외환은 은행이 수출업체에 수출대금을 미리 지급하고 나중에 수입업체에서 돈을 받는 무역금융의 일종으로 동일인 여신 한도에 포함된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매입외환 금액이 증가한다.

우리 신한 하나 외환은행의 지난 4월 말 기준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동일인 여신 한도는 23.4%다. 2010년 말(16~17%)보다 7~8%포인트 증가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삼성과 해외 수입업체들이 대부분 월말에 청산 결제를 하는 까닭에 월중에는 법정 한도인 25%를 꽉 채워 매입외환을 추가 인수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의 매입외환 물량을 외국계 은행에 넘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국내 시장에 안주하다 보니 삼성전자의 무역 결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왜소해졌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수출은 2010년 95조원에서 2013년 141조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이 기간 국내 은행들의 자기자본은 163조원에서 180조원으로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안방 시장에서 도토리 키재기식 경영에만 안주해온 은행들이 매입외환과 같은 무역금융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계 은행에 내줘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