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과세 12년만에 부활] "소비 빙하기, 기업 곳간이라도 풀어라"…내수진작 고육책
정부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내수부진이 심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가계소득 증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이 과연 경제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는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10대 그룹만 477조

기업들의 사내유보율(이익잉여금/총자산)은 2001년 4.6%에 불과했지만 2002년 11.9%로 급증한 뒤 현재는 20%대에 올라서 있다. 국내 10대그룹(금융사 제외)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477조원에 이른다.

적정 수준을 넘어선 기업 유보금에 법인세를 다시 부과해야 한다는 것은 원래 야당 주장이었다. 지난해 11월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은 법인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안을 담은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해 놓은 상태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배당소득 과세와 형평성을 맞추면서도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 세무 담당 회계사는 “소득세가 법인세에 비해 높은 경향이 있어 그동안 대주주가 각 법인에 소득을 유보해 소득세 부담을 회피하려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사내유보금 과세뿐 아니라 유보금에서 발생하는 금융소득 등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신 직원 성과급이나 배당 등으로 유보금을 쓸 경우엔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유인책’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年2조 추가부담

사내유보금 과세가 시행되면 기업들의 세 부담은 수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인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각 사업연도의 유보소득(전년 대비 이익잉여금, 자본잉여금 증가분)에서 적정유보소득을 뺀 금액에 15%의 세율을 매겨 과세한다는 게 골자다.

여기서 적정유보소득은 ①해당 사업연도 소득액에서 법인세·농어촌특별세·지방소득세와 이익준비금, 의무적립금 등을 뺀 금액의 50% ②자기자본의 10% 중 더 큰 금액이다.

만약 이 기준을 올해 법인세 납부 때 적용했다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 올해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유보소득(이익잉여금 기준) 증가분은 28조원, 적정유보소득은 15조원(자기자본 150조원×10%)이다. 따라서 과세금액은 28조원에서 15조원을 뺀 금액의 15%인 1조9500억원에 달한다. 같은 산식에 따라 현대자동차도 약 4000억원의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

경제계는 사내유보금 과세 도입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먼저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법인세를 내고 난 뒤에 축적해둔 것인데, 여기에 또다시 세금을 매긴다는 건 이중과세라는 지적이다. 기업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운영비용과 투자자금으로 활용되는데, 유보금을 줄이라는 건 기업들에 은행대출 등 외부자금 차입을 늘리라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배당을 늘리는 정책도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상황에서 자칫 기업들의 현금흐름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사내유보금

기업의 당기이익금 중 세금과 배당 등으로 지출된 금액을 제외한 뒤 사내에 쌓은 금액. 단순히 ‘쓰고 남은 돈’이 아니라 사업 확장이나 영업 활동을 위해 기계·설비·건물 및 현금성 자산 등의 형태로 재투자되는 돈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조진형/이태명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