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중견작가 홍승혜 씨. 연합뉴스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중견작가 홍승혜 씨. 연합뉴스
작가마다 작품에서 추구하는 바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감성을 분출하고 어떤 이는 관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중견작가 홍승혜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그의 관심은 작품과 공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있다.

다음달 1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홍씨의 개인전 ‘회상’은 1997년부터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이름 아래 추구해온 작업을 되돌아보기 위한 전시다. “1996년 컴퓨터 작업을 하다 발견한 포토샵을 통해 그리드와 픽셀로 생성되는 도형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그는 이후 네모꼴의 그리드를 기본으로 해 이를 나란히 배열하거나 조합, 반복, 분해함으로써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해왔다.

이번 출품작들은 ‘회상’이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작가가 그동안 시도해온 작품의 기억을 끄집어내 형태와 소재를 변형해가며 현재화한 것이다. 기억은 알게 모르게 오늘의 의식 속에서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모든 작품을 흑백 톤으로 재현한 것도 그런 회상 작용의 암시다. 1997년 초에 제작한 컴퓨터 드로잉 기반 실크스크린 작업은 잉크젯 프린터로, 2000년 서랍 모양의 알루미늄 패널 작업은 실재의 가구(서랍장)로 재현됐다.

지난 10년간 제작한 6편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더 센티멘탈’ 연작을 한데 묶은 영상 작품 ‘6성 리체르카레’도 흑백화면으로 전환해 과거를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했다. 다양한 그리드의 변형태가 영상 속에 명멸하는 가운데 바흐의 모음곡 ‘음악의 헌정’이 배경음으로 흐른다. 이 푸가 음악은 독립성이 강한 두 개 이상의 멜로디를 대립적으로 결합시킨 대위법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그리드의 교차를 토대로 삼는 작가의 작품 콘셉트와 일치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여섯 개의 애니메이션은 서로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바흐 음악의 대위법처럼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고유의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곧 관계의 그물망으로 얽힌 인간 사회의 축도다. 인간 사회가 너도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일관된 개성을 갖고 있듯이 말이다. 작가가 ‘유기적 기하학’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본질이다.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