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멀럴리 리더십' 필요한 한국 제조업
올 여름 미국 경제 최고 화제의 인물은 앨런 멀럴리다. 미국 언론은 보잉에 이어 포드자동차의 재기를 일궈낸 멀럴리를 앞다퉈 조명하고 있다. 2006년 9월부터 8년여에 걸쳐 포드를 이끈 그는 모두가 회생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이 미국의 간판 제조업체를 부활시켰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적자에 시달렸던 포드는 2009년부터 흑자 행진을 거듭했다. GM, 크라이슬러와는 달리 정부 지원도 없이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멀럴리 리더십의 요체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혁신과 융합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기술제일주의다. 포드는 멀럴리 재직 중에 대변신했다.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보잉사에서 디지털기술을 접목시킨 여객기 개발을 주도한 엔지니어답게 멀럴리는 기술 혁신을 통해 포드를 환골탈태(換骨奪胎)시켰다. 크기는 줄이되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인 엔진을 개발하고 친환경 모델을 잇따라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연동시키는 한편 중·소형차에도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탑재했다. 포드는 일본이나 유럽 차보다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을 깨뜨렸다.

둘째,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주의다. 포드 본사 지척에 자택을 마련하고 초인적인 근무를 마다하지 않은 멀럴리는 경제 위기가 발발하자 각종 급여를 자발적으로 삭감했다. 경영난이 악화돼 정부 지원을 받게 되면 자신의 임금을 1달러로 줄이겠다고 서약했다. 수십 대에 달하던 임원용 비행기를 한 대만 남기고 매각했다. 이런 조치를 통해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멀럴리는 애스턴 마틴, 랜드로버, 볼보를 매각했다. 판매량이 저조한 모델을 퇴출시키고 생산라인을 폐쇄하는 한편 인력을 감축했다. 임금을 재조정하고 노동 시간을 늘려 제품 경쟁력을 높였다.

셋째, 자국 소비자 으뜸주의다. 멀럴리는 “왜 우리는 2등 고객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했다. 포드는 오랜 기간 나라마다 소비자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이한 모델을 판매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국내 모델보다 해외 모델이 낫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멀럴리는 이런 인식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한 포커스와 피에스타 등 중소형차 신모델을 해외시장뿐 아니라 미국에도 판매했다. 과거 포드를 외면했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자국 소비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1일 멀럴리가 포드를 떠난 뒤에도 멀럴리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포드는 2분기 어닝 쇼크에 시달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간판 기업들과 달리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규모인 26억달러에 달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 늘어난 13억달러였다. 아시아와 유럽뿐 아니라 북미시장에서 선전한 덕이었다. 매출과 북미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1.2% 줄었지만 멀럴리가 단행한 개혁 조치로 인해 지출이 줄고 효율성이 높아진 것이 주원인이다. 하반기에는 F-150과 머스탱 등 혁신 기술을 적용한 신차들을 내놓으며 신차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멀럴리 리더십은 한국에 많은 교훈을 준다. 급격한 원화 절상과 후발주자들의 추격으로 인해 최근 들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한국의 제조업체들이지만 멀럴리의 포드처럼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기술개발, 조직원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기 희생, 자국 소비자를 중시하는 정책이 근간이 된 대혁신이 절실하다. ‘한국의 멀럴리’가 등장해 국제 경쟁력으로 무장한 농업, 업그레이드된 서비스업과 함께 제조업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끌기를 기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경영학 명예교수 kesopyu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