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가미한 일본판 '사랑과 전쟁'
보통 결혼 8년차 부부의 일상은 평화롭다. 신혼의 단꿈에선 벗어났을지 몰라도 서로에게 익숙해져 눈빛만 주고받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때다. 시부모를 모시며 남편과 단란하게 사는 모모코는 주부로 사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특기를 살려 문화센터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채고 혼란에 빠진다.

일본 중견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 《사랑에 난폭》은 언뜻 보면 불륜을 다룬 통속 소설처럼 보인다. 이미 남편은 태연하게 해외 출장을 핑계로 집을 나가 내연녀와 여행을 다닌다. 급기야 내연녀가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과의 관계를 끝내려 한다. 각종 가정 파탄을 그린 드라마 ‘사랑과 전쟁’ 소설판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요시다는 작품을 그저 막장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심각하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저 한 가정이 서서히 붕괴되는 모습을 담담히 그릴 뿐이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불륜녀의 일기, 3인칭 서술, 모모코의 일기가 반복되는 점이다. 여럿이 같은 일을 보고서도 느낀 점은 모두 다르듯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인 사랑 문제가 서로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기에 좋은 기법이다.

위기에 빠진 모모코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집안에 멀쩡히 있는 다다미를 이상하게 여기더니 급기야 전기톱을 구입해 방바닥을 뚫는다. 그 와중에 남편 가족이 대대로 살던 집과 그 가족의 내력을 알게 되며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사랑과 전쟁’이 스릴러로 변하는 순간이다. 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닫는 순간 강한 반전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뭔가 이상하다. 모모코에겐 비밀이 있었다.

요시다는 40대 남성이지만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 호평받는 작가다. 늦여름 더위도 잊게 만드는 수작으로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