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7일 학교폭력 등 문제를 일으킨 청소년들이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방문해 절도 혐의로 기소된 소년범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27일 학교폭력 등 문제를 일으킨 청소년들이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방문해 절도 혐의로 기소된 소년범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흉포화하는 촉법소년 범죄…연령 낮춰야 하나?

지난 10일 경남 창원시에서 승용차를 훔쳐 달아난 A군(13·중학교 1년)을 경찰이 뒤쫓아 붙잡았다. A군은 전날 사천시에서 승용차를 훔쳐 여자친구를 옆자리에 태우고 달아났다. 쫓는 과정에서 A군이 운전하던 차량이 경찰 순찰차 2대를 들이받아 경찰관 2명이 광대뼈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고, 순찰차 2대가 파손됐다. A군은 앞서 8일과 6일에도 승용차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혔다. 경찰은 경고방송에도 도주하는 A군을 잡으려고 공포탄까지 사용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만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입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 같은 범행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3월에는 강원 원주시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20대 여성을 초등학생 6학년 3명(만 11세)이 성폭행했다. 당시 경찰은 소년법상 ‘촉법소년(觸法少年)’ 규정에 따라 간단한 조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촉법소년이란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를 말한다. 현행 소년법에 따르면 촉법소년은 형사책임능력이 없어 형사처벌 대신 법원의 보호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촉법소년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는 만큼 죄질이 나쁘고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아예 형법과 소년법에 만 14세 미만으로 규정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솜방망이 처벌로 죄의식 없고 흉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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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범죄의 흉포화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촉법소년 범죄 건수(법원 소년부에 송치되는 건수)는 연간 1만건 내외다. 그런데 최근 강도·성범죄·방화 등 강력범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강력범 비율은 2012년 3.3%에서 지난해 4.1%로 높아진 데 이어 올해 7월 현재 5.4%를 기록하고 있다.

촉법소년 범죄 건수 중 강력범 비율 상승을 이끄는 건 성범죄다. 성범죄 비율은 2012년 2.3%에서 올해 7월 현재 3.8%까지 높아졌다. 재범률도 2009년 32.4%에서 2012년 37.3%, 2013년 41.6%로 증가 추세다. 연령별로는 촉법소년 연령 상한인 만 13세(중학교 1~2학년)가 2013년 발생한 촉법소년 범죄의 약 73%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촉법소년 범죄가 점차 흉포화되고 재범률도 높아지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소년법 제4조는 범죄를 저지른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는 형사사건으로 입건하는 대신 가정법원 소년부로 바로 송치해 보호사건으로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사건을 송치받은 법원 소년부는 촉법소년을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다. 보호처분의 종류는 보호자 감호 위탁(1호), 사회봉사명령(3호), 보호관찰 처분(4호), 소년원 송치(8~10호) 등이다. 이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이 길게는 2년까지 소년원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다.

10일 경남 창원에서 13세 A군이 절도한 차량에 부딪쳐 파손된 경찰 순찰차. 마산중부경찰서 제공
10일 경남 창원에서 13세 A군이 절도한 차량에 부딪쳐 파손된 경찰 순찰차. 마산중부경찰서 제공
일선 경찰관은 촉법소년 중 자신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 범행을 계속 저지르는 데다 죄의식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희승 관악경찰서 아동청소년계장은 “여러 번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은 ‘난 어차피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촉법소년들 중에는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을 훈장처럼 여기고 또래 집단에서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웅 영등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상습적으로 법을 어기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며 “처벌이 제대로 안 돼 범죄 습성만 키워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촉법소년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피해자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봉수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년범에 의한 강력범죄가 늘고 있는 만큼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관용적 대처로 일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청소년 성장속도 빨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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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범죄가 흉포화되자 정치권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상한선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은 2012년 12월 형법 제9조의 형사미성년자 기준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같은 당 김상민 의원은 2013년 11월 소년법 제4조의 촉법소년 기준을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 의원은 법제정 당시와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경제성장과 방송·인터넷 매체 발달 등으로 형법이 제정된 1951년(소년법상 촉법소년은 1963년) 당시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들의 정신적·육체적 성장이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만 14세 미만 청소년 범죄도 집단성폭행·방화 등 날로 흉포화하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연령 낮추는 게 해결책은 아냐

촉법소년 문제를 단순히 연령 기준을 낮춰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강 의원의 형법개정안이 2년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유도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학계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은 형사미성년 연령을 오히려 높이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유엔 아동인권위원회는 형사책임연령을 ‘12세 이하’로 낮추지 말고,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으로 상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4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만 14세 미만으로 형사책임연령을 낮춘 나라는 3개국에 불과한 반면 만 14세 이상으로 높인 나라는 11개국에 달한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는 “만약 12세로 낮췄다가 이후 11세 이하 범죄가 문제되면 또 기준을 하향해야 하는가”라며 “뇌과학이나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형사책임연령을 낮춰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는 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도 막상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주진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은 어디까지나 교화와 선도가 목적”이라며 “대부분이 단순 절도·폭행 등인데 굳이 12세로 낮춰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년범죄가 가정불화나 가난 등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의 책임을 어린 소년들에게만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 교수는 “가정에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돌봤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아이들이 많다”며 “처벌 강화보다는 소년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형사처벌은 평생을 범죄자로 지내도록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원의 보호처분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프로그램을 정비해 효과적인 교화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교수는 소년 범죄의 흉포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절충적 견해를 내놨다. 그는 “연령에 따른 획일적 적용보다는 사안과 죄질에 따라 처벌수위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촉법소년이라 하더라도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